아파도 출근

다 그러고 산다

by 주택야독
아파도 출근.png (이미지 출처 : Chat GPT 이미지 생성)



장염


새벽 4시.

잠에서 깼다.


커다란 손이 배를 쥐어짜는 듯한,

거대한 창이 배를 푹 찌르는 듯한 통증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가야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울렁거림, 속쓰림을 동반한 극심한 복통이었다.


거실에 나와 물을 한잔 마셨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6분.

오늘 배송할 물량이 업데이트 되었을 시간이다.


업무폰을 꺼내 본 수량은..

대략 400개 였다.


깊은 한숨이 먼저 튀어나왔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커졌고, 어깨가 추욱 처졌다.


400개 정도의 물량이면 한 번의 배송으론 다 커버할 수 없다.

'두바리', 즉 두 번에 나눠서 배송을 해야한다.


7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한다는 뜻이었다.


고로, 더 자야했다.


곧바로 침대에 가서 누웠다.


복통이 위를 따라 식도까지, 심지어는 목까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화장실도 가보았다가,

배 마사지도 해보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배송 물량이 주는 중압감과

일찍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더욱 억눌렀다.


결국 6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다시 잠에 들었다.




그래도 출근



우리 택배 영업소는 인원이 적다.

가족 같이 편한 분위기라 좋기도 하지만,

오히려 인원이 적어서 생기는 불편한 점도 있다.


대체 인력이 없다.


출산, 사고, 가족 대소사 등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웬만해선 내 일을 다른 기사들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난 아파도 출근한다.



신기했다.


몸이 긴장을 해서 그런가,

7시에 일어났는데 복통이 줄었다.

두통과 몸살기가 생겼지만, 생각보단 움직일만 했다.


씻고 출근한다.


짐을 싣고 '한바리'를 한다.

다시 센터에 올라와 또 짐을 싣는다.

그리고 '두바리'를 한다.


복통이 또 찾아올까 두려워, 하루 종일 물 말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일했다.


서서히 강해지는 두통과 몸살기에 발걸음은 느려지고, 행동은 굼떠진다.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두 칸씩 오르던 계단도 한 칸씩 꾸역꾸역 올라간다.


오후 8시 반.

가까스로 집에 왔다.



하루 종일 생각해본 결과,

갑작스런 장염의 원인은 어제 밤에 먹은 '날치알 주먹밥'이었다.


냉동실에 오래 있었던 날치알을 처리한다고,

꽤 오랜 시간 실온에 방치하듯 해동한 게 문제였다.


평소 위장이 약한 여자친구는 나보다 더 상태가 심각했다.

흰 죽을 사와, 된장국을 간단히 끓여서 함께 먹었다.


아팠지만 그래도 다행히 잘 버텨낸 하루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아파도 출근했다.

아픈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였다.

이 사실이 묘한 위로가 되었다.



같은 택배기사들 이야기만 들어도 그렇다.


발가락 신경을 다쳐서 수술했지만,

대체 인력이 없어서 꾸역꾸역 나와서 절뚝거리며 일을 해야했던 택배기사 A씨.


몸살 감기에 걸렸지만,

병원가서 주사 한방, 약 한 모금 삼키고 나와서 일을 했던 택배기사 B씨.


전날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이마를 몇 바늘 꼬맸지만,

집에 있는 자식들 생각에 돈 벌러 나온 택배기사 C씨.



택배기사만 그런게 아니다.

나의 지인 이야기다.


극심한 장염과 설사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긴 시간 동안의 승진 시험에 무사히 참여해 결국 승진을 해낸 공무원 D씨.


전날 급체로 응급실에 갔지만,

다음 날 아침 회의에 무사히 참여한 회사원 E씨.


발목을 삐어서 염증이 생겼음에도,

하루 종일 서서 손님들을 응대하고, 커피를 대접했던 바리스타 F씨.



나만 그런게 아니다.

다 그러고 산다.


다 그렇게 아파도 출근한다.


그러니 힘내자.

그래서 버틴다.


다들 그렇게 충실히 살아가는 듯 하다.


이 생각에

난 오늘도 발걸음 하나 힘차게 뻗어본다.

작가의 이전글쓸 게 없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