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그만두다

내 삶을 위한 선택

by 주택야독

(2024년 7월 14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2024년 7월 초,

강한 현타에 괴로웠다.


돈은 많이 벌지만, 내 삶은 전혀 챙기지 못하는 일.

바로 쿠팡 때문이었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돈은 30만원 가까이 벌었지만, 생일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출근해서 밤 11시 정도가 되니 일이 끝났다.

어떻게 보면 생일날, 눈 뜨고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도 늦게 끝날 상황에 놓였다.

생일파티는 커녕, 여자친구와 식사 한끼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종종 자연스럽게 찾아오던 현타와 무력감이 그 날도 나를 덮쳤고,

끝내 난 지고 말았다.


우울에 깊게 빠졌다.


스스로를 전혀 챙기지 못한 채,

그저 돈 때문에 하루종일 일만 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어졌다.


앞길은 막막했고 인생이 망한 것만 같았다.

체념한 채로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예민해졌고, 여자친구와 다퉜다.

심지어 그녀를 탓하는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나는 후회했고,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슬퍼했다.


나는 후회 그녀는 슬퍼.png (이미지 출처: ChatGPT 이미지 생성)



일하는 중이었다.

후회와 우울로 뒤덮인 난,

슬퍼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늘 해오던 대로.

핸드폰으로 배송지와 수량을 확인하고,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

문 앞에 배송한 뒤 사진을 찍었다.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정신은 아득해져 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난 이렇게 지지리도 못났지만, 그녀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우리는 벌써 8년 차 커플이었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녀는 나보다도 날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못난 발언에 슬퍼한 것도 잠시,

그녀는 열심히 구인 공고를 알아봤던 것이다.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다른 택배사에 자리가 났다고 했다.

무조건 이직하자는 것이었다.

우유부단한 날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덕분에 나 또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 그 쪽으로 이직하기로 결심을 했다.



돈은 물론 2-300만원, 어쩌면 그 이상 줄겠지만,

그것이 내 삶을 위한 선택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꿈,

주일 지키기,

저녁 제때 먹기,

공휴일에 다른 사람들처럼 쉬기

등..


그동안 수백 만원가량의 돈을 벌기 위해,

포기하고 살았던 것들을 되찾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 덕분에 용기를 냈고, 쿠팡 팀장과 전화를 했다.


사실 새로 구하는 택배사 쪽에서도 급한 상황이었다.

빨리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보니 쿠팡 팀장에게 그만둔다는 말과 함께 오래 일해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난 10일 정도를 제시했고, 생각보다 흔쾌히 쿠팡 팀장이 허락을 했다.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분노, 후련함, 아쉬움, 기쁨, 슬픔, 짠함, 후회'

등의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쿠팡에서의 마지막 10일 버텼다.


쿠팡을 그만두다.png (이미지 출처: ChatGPT 이미지 생성)


그리고 어제(24.7.13)..

2년이 넘는 나의 쿠팡 퀵플렉서 생활은 끝이 났다.


후련함과 동시에 걱정이 몰아쳤다.

개인 시간을 많이 확보한 것은 더없이 좋았지만,

줄어든 수입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현재도 많이 걱정된다.



하지만, 뜻밖의 전화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같은 팀 동료였던 기사 형님과의 통화였다.

그 짧은 대화에서 깨달은 것이 나에게 큰 힘과 도움이 되었다.


94년생인 그 형님은 전직 운동선수 출신에 자녀가 벌써 두 명이나 있는 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팀을 나가게 된 형님이기도 했다.


그 분은 팀을 나가,

쿠팡 야간과 한진 택배 주간을 겸업하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

물론 친구와 함께 2명이서 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닌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돈 모아서 사업’이라는 목표 하나를 보고 달리는 그 형님의 모습에 나는 감탄을 했다.

아직 미혼인 나로선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그 형님의 모습에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그 형님도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나도 다시 한번 힘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때론 생각은 머물수록 변질되기 쉽다.

모순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형님에게 동질감 비슷한 걸 느끼며 힘을 얻었음에도,

어느새 비교의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형님에 비하면 난 너무 나약하고 모잘라 보였다.

수동적이고 목표의식도 약하고, 몰입력도 약했다.


너무너무 부족한 인간 그 자체였다.


내가 너무 싫어지기 시작했다.


자책과 자기 비하의 어두컴컴한 입구에서,

난 주님을 떠올렸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주님이 없다면 난 나약한 인간일 뿐이구나.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이구나…’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그 분 앞에 내려놓았다.

신기하게도 내려놓으니 힘이 났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처럼 기분과 생각이 밝아졌고,

말라버린 시든 풀이 비를 맞은 것처럼 활력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주일 예배에 가서 이런 기도 제목으로 기도했다.


1.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일자리 주심과, 여자친구와 고양이들과의 소중한 연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2. 부족한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나의 근심과 걱정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을테니, 부디 이끌어주세요..

3. 복돌이(죽을 뻔할 정도로 아팠던 우리집 고양이)가 건강하게 다시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게 기적을 행해주세요..

복돌이.jpg 우리집 복돌이♡


그 형님과의 전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난 여전히 위태롭고 많이 흔들릴 만한 사람이다.


그러니 절실하다.


앞으로 더욱 주님께 의지하며,

생활비를 줄여보며,

글을 미친 놈처럼 써볼 계획이다.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2년 동안 온갖 고생 다하며 쿠팡에서 버텨낸 나야.

고생많았다, 정말.

아무도 몰라준다해도 난 너의 힘듦과 수고를 안다.

그니까 낙심치 말고 전진하자.

너가 원하는 거 이룰 수 있도록..

후회 없이 달려보자.


그리고 항상 몸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