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으로 무병장수

공휴일에도 일하는 쿠팡 택배기사

by 주택야독

(2022년 6월 25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욕 듣는 택배기사.png

(이미지 출처: ChatGPT 이미지 생성)


공휴일인지도 모르고 일을 했다.

내 구역은 아파트 대단지라 그런지 특히 사람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다양한 주민들과 함께 탄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저녁 외식을 어디서 할지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오늘은 '즐거운 공휴일'.

땀을 뻘뻘 흘린 채 박스가 가득 실린 구루마(손수레)를 끄는 나에게 오늘은 '유독 더 힘든 날'이었다.


일부러 눈을 안 마주쳤건만, 굳이 나에게 몇몇 사람들이 말을 건넸다.


"오늘도 택배 해요?", "힘드시겠다.", "빨간 날에도 일해요?"


그럼 난 대답한다. "네, 저희 쿠팡은 빨간 날에도 일합니다."

(그때 당시, 타택배사들의 주7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sticker sticker


서럽기도 하고, 이대로의 내 인생이 맞는지 의문도 들었다. 많은 질문과 걱정들이 머리를 스쳤다.

'스물 여섯에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는걸까?', '빚은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든 다시 상경해서 학교를 마쳐야 하는 건 아닐까.' 등..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허리가 배송 초반부터 아팠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나로선 걱정과 두려움이 커졌다. 제발 무사히 일을 끝낼 수 있길 기도했다. 오늘은 좀 더 빨리 자겠다고 결심도 했다.



그러나 더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몸도 힘든데, 사람이 더 힘들었다.


우리 팀에는 30대 기사분이 한 분 있었다. 평소에도 그 분과는 일부러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았다. 하는 행동과 내뱉는 말마다 앞뒤가 다르고, 이간질을 일삼는, 내 기준에 꽤나 별로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힘든 날에 그 분마저 날 괴롭힌 것이다.

쿠팡은 돌아가며 주 1회 휴무를 갖는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매주 카톡 단톡방에서 휴무를 정한다. 이번에도 역시 핸드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카톡 알림음을 기다리다가, 원하는 휴무 날짜에 내 이름을 적어서 올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갑자기 20대를 꼭 집으며, '이기적이고 배려 없다'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한 것이다.(20대는 나를 포함한 단 두명뿐이다.) 당황스러웠다. 화난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그는 위선적인 태도로 내 전화를 받았다. 단톡방에서의 적대적인 발언들과 상반되게, 갑자기 나를 위하는 듯 말하는 것이다.

'xx야, 내가 너 위해서 이런 말 해주는 거야.'

'사람들이 너희 20대들 욕 많이하는 거 몰랐지?'

'형이 어떻게 커버쳐주고 있으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속이 뻔히 보이는 말들을 뻔뻔스럽게 하는 그의 태도에 기가 찼다. 그럼에도 어쩌겠나. 하필 바로 옆자리에 매일 얼굴 봐야하는 사이인걸.. 사회생활이란 게 다 이런건가 싶었다. 그냥 그냥 넘겨냈다.

단톡방에서는 잘 마무리됐지만, 그 후폭풍은 내 마음 속에서 생각보다 오래 남아있었다. 생각을 안하고 싶어도 계속 떠올랐다. 떠오를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내 자신이 왜 이렇게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몇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문득 결심이 섰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여기서 그들은 30대 기사분과 그 무리)

아니, 그들과 다르고 싶다.

그들처럼 서로 욕하고 뒷담까고 가식 부리며 살고 싶지 않다. 억지로 서로 아부하며 애쓰고 싶진 않다.

그냥 나답게 조용히, 묵묵히 해나가자. 내 일만 잘 하자.

낮에는 택배기사, 밤에는 독서과 글쓰기. 나만의 스위치를 잘 껐다 켜자.


사회생활이라는게 참 그렇다. 각자의 이익을 잘 챙기면서, 상사와 회사에는 헌신하는 '척'을 해야한다는게 참 힘들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확실한 거 하나는..

난 평생 택배에 뼈를 묻고 싶지 않다. 택배기사라는 일은 나에게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 그저 돈벌이일 뿐이다.

나의 이런 마음은 분명 티가 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더욱 자극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건 좀 속상했다.

(물론 그 기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난 사람들이 그렇게 뒤에서 내 욕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일이면 다시 출근해야할 것을..


한참 말랑해진 가슴을 억지로 단단히 다져본다.


'그래, 맘대로 욕해라. 덕분에 무병장수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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