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내게 미안해

대체될 수 없는 사람

by 주택야독

(2024년 8월 31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어린 내게 미안해.png (이미지 출처: Chat GPT 이미지 생성)



운반 기사



택배 영업소 소장의 부탁으로 대형마트 집하 알바를 했다.

대형마트 물류 창고에 가서 짐이 한 가득 쌓여있는 팔레트들을 센터로 옮기면 되는 일이었다.

지게차가 상하차를 다 해주니, 난 그저 실고 운전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일당 10만원.

이름하여 '꿀알바'라 할 수 있었다.

(소장이나 다른 기사 형님들 말에 의하면..)


옮겨야 하는 팔레트는 총 4개였다.

탑차에 팔레트는 최대 2개가 들어간다.

그러니 총 2번을 왕복하면 되는 셈이었다.


택배 센터와 대형마트를 두 번 왔다갔다 하면서 뼈저리게 체감했다.

택배기사라는 직업의 민낯을 말이다.



정말로 ‘운송’, 혹은 ‘배달’을 위한 인력.

누구나 할 수 있는…

난 그저 그런 운반 기사였던 것이다.


그게 좀 서글펐다.

내가 2년 넘게 해오던 일이 이런 거였구나라는 절망 섞인 실감이 한층 더 깊게 몰려왔다.


그치만 뭐 별 수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운전하는 수 밖에..


혹여라도 팔레트 위에 쌓인 물건이 쏟아질까봐,

천천히 조심히 커브길을 돌았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큰 인정을 받고 싶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또 동시에 돈도 많이 버는 편에 속하고 싶다.


내 욕심스러운 생각들이다..



물론 '개꿀'이라고 생각하며 자족하며 사는 기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성장 강박이 있고,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나에겐 그 '개꿀'이 그리 달달하지만은 않았다.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천진우라는 인디 가수의 '여름 좀비'라는 노래다.


천진우 여름좀비(출처 천진우 유튜브).png (이미지 출처: 유튜브 천진우 - 주제)


https://www.youtube.com/watch?v=sNhr4eQoC14



이 가사가 내 가슴을 울렸다.

내가 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이게 최선이라서 어린 내게 미안해.


난 지금 운반 기사다.

짐을 나르는 운반 기사일 뿐이다.


물론 이 일이 무가치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쭉 이 일을 하겠다는 것 역시 아니다.


더 나아질 것이다.

내 스스로 더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20살 여름 방학.

한 친구와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입학한 덕분에,

부모님께서 큰 맘 먹고 보내주셨다.


당시 여행 도중 만난 한 서울대학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내 꿈은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라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로선,

당시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직까지 머리 안에 깊이 남아 있는 이유다.



AI가 일상 속에 깊게 스며든 현대 사회.

그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인간으로서의 생존적 위협.


편리함과 두려움의 양날의 검을 지닌 AI 시대를 사는 난,

오늘도 생각에 빠진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언제까지 택배를 할건지, 혹은 할 수 있을지.

어떻게 나의 가치를 꾸준히 창출해낼 수 있을지.

언제쯤 나도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이 글을 읽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치있다고 느끼는,

AI와 구별될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잘 발전시키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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