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악함
(2024년 11월 10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나의 가장 악한 모습은 무엇일까?
너무 많다.
남의 티끌은 지적하면서 나 자신의 티끌에 대해서는 용인하고 관대한 모습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렸을 때 동생한테 그랬듯, 나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서 그 사람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를 느꼈던 모습도 있다.
학교 생활 도중 왕따를 당하던 친구를 놀리고 친구들의 웃음을 유발하며 느꼈던 우월감과 짜릿함도 있다.
내 부모의 욕을 하고 그들이 너무 미운 나머지 평생 절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택배차를 운전하며 진상 운전자를 만나 욕으로 내 입을 더럽힌 적도 있었다.
생각을 해보자면 이렇게나 많다.
내 안의 악은 너무 많다.
이런 악한 나인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혹은 ‘인성이 괜찮은 사람’의 평가를 듣는다.
이 얼마나 모순되었는가?
얼마나 뻔뻔하고 이중적인가?
사실 누구에게도 이 글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저 내 깊은 곳에 있는 수 많은 악 중 일부를 발췌했을 뿐인데도,
그 누구도 내 글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렇게 난 악하고 겉치레에 집착하는 인간이다.
한없이 악하고 동시에 연약하다.
이러면서 어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고 산단 말인가?
아니다.
어쩌면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니까,
그리스도인이라도 되어야 그나마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 모순적인 나는 감동에 취약하다.
어쩌면 충동일지도 모르는 순간의 감정변화에 따라 사람 자체가 바뀐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예배 혹은 말씀 혹은 훈훈한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적으로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게 운 좋게 성공하여 위에서 말했던 ‘좋은 사람’, ‘인성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획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반면..
조금이라도 억울하거나 신경이 거슬리는 상황에 놓이면,
나는 실로 악마 그 자체가 된다.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건 물론이거니와,
어떻게든 더 최악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런 언행을 통해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래야만 나아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해지려는 습성이 있다.
‘난 쓰레기야.’라기 보다는 ‘난 착해.’ 혹은 ‘난 괜찮은 사람인 편이야.’라는 등의 인식으로 스스로를 유하게 바라보려한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가장 멀리 있는 나’,
그 중에서도 ‘가장 멀리 악한 나’를 생각해보니,
그리 멀리 있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얼마나 내가 겉치레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는 인간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글이다.
비밀리에 쓰는 일기라서 그나마 쓸 수 있었던 글이었다.
(with 소설창작수업)
(이 글은 최옥정 작가님의 소설창작수업이란 책을 읽고 썼다. '가장 멀리 있는 나'를 생각해보자는 내용에 기반하여 쓴 글이다. 아마 캐릭터 창작 관련된 파트에서 나온 물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 책은 소설가가 꿈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차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며 참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추악함과 다시금 마주해보았다.
이런 자기 탐색의 시간이 그리 나쁘게 생각되진 않는다.
못난 나를 발견할수록 더 나아질 수 있는 잠재력은 커지니까.
동시에 묻고 싶다.
여러분의 '가장 멀리 있는 나'는 과연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