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uhapark May 04. 2022

상상 그 이상의 상해 Lockdown

통제와 자유, 대립의 서막


상해 Lockdown , 격리 한 달이 넘어가면서 생활하다 보니, 봉쇄를 경험하면서 느낀 것과 생계를 위해 필요로 하는 많은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잊히거나 무뎌져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 정리해두고자 글을 쓰기로 했다.


중국에서 봉쇄란, 이 땅에서 봉쇄란, 무슨 상상을 해도 그 상상 이상이다.

2022년에 이런 일을 경험한다고? 이게 가능하다고? 하는 모든 것이 발생하는 이곳. 그래서 중국 봉쇄 중에 발생하는 무수한 일 중,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고 발견했던 상황들과, 중국에서의 생존과 생활에 관한 필수 요건들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 없으니까-


2020년 2월 한국에서 돌아오고 14일 격리 이후로, 또 격리를 경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코로나 영향으로 한국을 오가기 어려운 상황이라 가족들도 못 만나고 이렇게 생활한 지 2년 반이 되었는데, 이제 한국을 가는 건 상상할 수 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번 상해 봉쇄를 통해 알게 된 건 2년 전 코로나 발생 당시 우한에서는 76일이라는 봉쇄기간을 가졌고, 최근에 갑작스러운 증가로 봉쇄했던 시안은 33일이었다고 한다.(시안에 계신 분 정보로는 확진자 위아래층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난 전체 봉쇄보다 이틀 정도 빨리 시작하게 되어서 지금 36일 차이고, 더 먼저 진행된 곳은 이미 60일가량 됐을 것이다. 막상 타 도시에서 생겼을 때 감각이 없었는데, 내가 사는 곳이 봉쇄가 되니까 실감이 나더라. 아! 이게 봉쇄구나! 중국의 봉쇄는 이런 것이구나! 도시 봉쇄라는 걸, 경험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날도 오는 게 역시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타인의 안 좋은 경험이 내 경험이 되지 않으리란 법 없고, 나의 안 좋은 경험이 타인은 안 겪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여하튼 본론으로 들어가면 중국의 경제 중심지인 상해가 봉쇄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초기 발생 시 만해도 상해는 절대 봉쇄 없을 거라고 했었던 정부의 말들로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급속도로 퍼지는 확진자 수에 상해 정부도 속수무책,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타 도시의 봉쇄 정책을 진두지휘 했던 정부 사람들이 상해에 방문했다는 사진들이 떠돌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4월 1일부터 전체 도시 봉쇄령이 떨어지고 말았다. 황푸강을 중심으로 푸동/푸시 지역으로 나뉘어 5일간 번갈아가며 봉쇄한다는 정책이었지만 사실상 모두가 아직까지 봉쇄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봉쇄 정책은, 정치적인 상황과 맞닥뜨려 있기 때문에, 더욱더 강하게 집행될 수밖에 없었다. 장기 집권과 관련된 국가 정책으로 제로 코로나를 달성해야만 하는 중국 국가의 상황에 놓였고, 그에 따른 상해 시민들이 어찌 보면 과한 희생이 됐다고 할 수도 있겠다. 너무 극단적인 봉쇄 상황으로 인해서, 생계의 문제가 놓인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뉴스를 통해 한국에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같은 상해 땅에 있지만 나 조차도, 상해의 지역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위챗의 뉴스나 단톡방을 통해 현 상황을 접하게 되는데, 정말 매일 수많은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다른 세계에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을 받는다. 한국 뉴스에 나오는 소식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다. 생계유지도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더 많은 음식을 넣기 위해 큰 냉장고를 사겠다며 알아보는 사람들. 결국 이렇게 극단적인 봉쇄는 개인의 생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물자 공급이 안돼서 이틀에 한 끼를 먹는다는 소식, 젊은 사람들이야 어플을 사용해 어떻게 해서든 돈을 지불하고 물자를 구하지만 노인들은 꼼짝없이 굶는 상황이 되고 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심각한 상황이 전파되자, 지역별 도움이 필요한 독거가구 사람들 명단을 만들어서, 물자 지원하는 청년들 모임이 운영되기도 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경험하고 싶지 않은 건, 코로나 확진자들이 모이는 方舱수용소의 형태이다. 감옥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들 정도의 공간으로 노인, 아이, 성별, 상관없이 그냥 한 공간에 모두 넣고,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있는데 화장실은 몇 개 되지도 않고, 샤워실조차 없는 곳도 있으며 그곳에서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내야 한다. 게다가 수용소마다 컨디션이 다르고, 사실 어느 수용소에 끌려갈지는 복불복인 상황. 도시 봉쇄로 학교도 폐쇄되어 있으니 학교도 수용소로 변하고, 수영장을 개조해 칸막이도 없이 침대만 놓고 수용소로 변하고, 도살장 같은 곳 맨바닥에 간이침대 두고 수용소로 변하고 있다. 얼마 전 폭우가 쏟아진 날엔 어느 한 수용소의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지붕이 날아가 홀딱 젖은 상태로 비가 그칠 때까지 잠도 잘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그런 환경이랄까? 결국엔 어디를 가느냐는 그 사람의 운에 따라 결정된다. 운이 좋으면 바다가 보이는 외딴섬의 호텔이 될 수 도 있고, 운이 나쁘면 버려진 폐 공간 간이침대에서 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상해에 사는 한 이탈리아 뮤지션(@_ale_pava_)이 方舱수용소로 가게 된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고, 자신의 주변 지인 및 해외 아티스트들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 상황을 공유하며, 이곳의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토리에 Covid TV 및 생활을 기록해두었는데, 이거 보면 수용소 환경이 저렇고, 우리도 끌려가면 저런 경험을 하겠구나 라는 사태 파악을 하게 해 준다. 이후에는 BBC 뉴스 및 이탈리아 뉴스에도 출연하였고, 이슈 되고 팔로워가 8천에서 2만 5천 명까지 증가하게 되었다. 이 사람의 영향이 컸는지, 유럽연합에서는 상해 정부에게 유럽 국가 사람들은 수용소에 데려가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4월 중순쯤 신규 정책에 노인, 어린이, 외국인은 수용소에 데려가지 않겠다는 정책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이 실현되기 어려운 점은, 아파트 단지 내의 주민들 반발이나, 중국 사람들의 항의가 있을 수 있어서 각각 사는 곳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꼭 외국인이라고 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우선 음성 확진 판정이 나면, 수용소로 이동해야 하니 짐을 챙기라는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단체로 확진자가 나와서, 늦은 밤 여러 대의 버스가 와서는 많은 사람들을 태워갔다. 확진자가 되면 마치 몹쓸 병에 걸린 것 마냥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게 너무 공포로 다가온달까. 음성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고 불안에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하는 이 환경과 걸리면 가야 하는 곳에서 다른 병이 또 걸릴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절대적으로 이곳에서는 걸리면 안 된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르는 게 코로나이고, 그래서 계속 불안 속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 불안감과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겠지.



  얼마  한국인 직장인   확진 판정  분이 수용소로 끌려가게  상황과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들.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르듯 이해는 하지만, 대한민국 상해 영사관의 존재 역할에 대해 청와대 청원한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gfh2s8) 읽었었는데, 남일 같지 않았다. 내가  일을  겪으리라는  없고, 결국에 영사관이든 뭐든  땅에서 사는 이상 도움받을 곳은 없으니 기대 말라는 . 이탈리아 뮤지션처럼 상황을 드러내거나,  살길 내가 찾아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각자도생이 답이다.





  위챗 톡방을 통해 보는 수많은 소식  어이없어서 웃긴 , 정말 이곳이기에 가능한  것의 상태를 경험하는 . 어느 한인타운에 살고 계시는 한국분이 중국 정부에서 배급받은 식료품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했다. 뱀을  앞에서   있다니, 내가 정부에서 받은   머리가 있었는데 이건 귀여운 편이라는 . 이곳의 생활에서 닭머리쯤이야. 그리고, 살짝 풀려나는 구역이 생겨나고 있는데, 차도, 전동차도, 어떠한 교통수단도 이용이 불가하기 때문에 칭푸 시골 동네에서는 말을 구매했다는 사진을 보았다. 진짜 ''타고 마트에 가겠다고,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상황에 어이가 없다.


  그리고 충격받았던 , 초기에 2살짜리 아기였는데 감염돼서 끌려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전혀 관리도 되지 않고 방관한 채로,  현장에서 아기의 사망을  부모가 오열하던 영상. 大白라고 칭하는 백색의 방역복을 입은  남성이, 음성 판정으로 가족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남아있던 애완견을 때려서 죽이는 영상(이유인 , 감염자의 집에서 나온 동물이라서-  영상을  수많은 상해 시민들이 탄복해하며 大白질탄하는 글을 올렸었다). 어제는 칭푸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남성이 자살하려고 뛰어내리는 장면과 떨어진 시신을  여성의 비명소리의 영상(누르지 말아야  버튼을 누른 기분) 그리고 마음 아픈 소식은, 한국인 40 중반의 남성(SPC 베이커리) 직원분께서 심장 질환으로 30일에 사망 추정인데, 며칠이 지나 핵산 검사에 나오지 않자 찾으러 방문했을 당시 발견됐다는 소식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 푸동에 위치한 정부 소유의 땅이지만,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주거 단지였는데,  구역을 수용소로 만든다고,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쫓아내는 영상. 대체  감염자들이 뭐길래, 멀쩡한 사람까지 망가뜨리는 건지,  거주자들과 大白무리들이 몰려와 분쟁과 싸움을 하고 있는 영상이 떴는데, 거의 맞고 있는 영상에 가까웠다. 이슈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영상이 삭제되었다는 . 마치 없는 일처럼 만들어버린 다는 . 최근 추가로 극단적인 집행을 하는데, 집집마다 철창을 일괄적으로 설치하는 장면을 보고, 이건 마치 도살장에 동물 가둔 느낌 같았달까? 중국인들이  철창을 부수며 분개하는 사진들이 있었고, 철창 가두고 불나면 어쩌냐 걱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철창 설치를  어느  아파트에서는 불이 났는데,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영상이 있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이곳의 심각한 상황.


   와중에, 배송비는 폭등했고 배송직원의 하루의 수입이 10, 아니 100 뛰자   벌겠다고 어느  코로나 감염된 배송직원이 KFC 공구 50세트를 길가에서 손으로 치킨들을 만지면서  아파트 단지 사람들 단체로 감염시켜 버리는 상황.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돈을 많이 버니까 계속  벌려고 사람들 감염시키려는 미친 짓을 보고 있자니 밖에서 먹고 사마시는 물건 모두 믿을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들은 사야 하니까 소독을 미친 듯이하고, 음식에도 손을 댔을까 의심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안 좋았던 소식은, 어느 영화감독의 영상 <四月之声 4월의 소리> 봉쇄기간 중 쏟아져 나오는 영상 및 전화통화 속에 담긴 상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만든 영상이다. 감독이 만들면서 남긴 글은, 영화인으로서 이곳에서 생기는 목소리들이 잊히면 안 될 것 같아서 만들었다고 했다. 전혀 연출된 것도 조작한 것도 아닌,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发物质.. 음식을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노인과 자신은 능력이 없어서 보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직원. 코로나 걸려도 죽지 않는데, 배고파서 굶어 죽을 거 같다는 말.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절박하고 애절함이 느껴졌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오전에 좋아요가 4k 정도 있었나. 순식간에 퍼져나가 오후가 됐을 무렵엔 100k이 넘는 좋아요와 공유수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 영상을 다시 보려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삭제된 상황. 사람들은 절대 삭제되면 안 되고 더 퍼져야 한다며 다시 올리고, 올리면 삭제되고, 올리면 삭제되고, 실시간으로 그 상황을 모두가 지켜봤다. 그리고 기존 영상이 삭제되자, 사람들은 비판하는 영상들과 재편집해 각색한 영상들이 올라오고, 하지만 그마저도 삭제되고, 마치 국민과 정부의 대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울 수 있으면 얼마든지 지워봐. 우리는 그래도 올릴 테니"라는 느낌과, "올릴 수 있으면 얼마든지 올려봐. 우리는 그래도 지울 테니"라는 느낌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 그 상황이 밤새도록 지속되었다. 그 상황을 목격하고 있자니, 인권을 말살시켜버리는 이 국가의 상황이랄까. 안타까웠다. 마음이 안 좋았다. 왜 이렇게 이 사람들의 목소리는 지워져야만 하는 것일까.



https://youtu.be/38_thLXNHY8



그나마 아직 이 유튜브에서는 볼 수 있었다.

  




   본 영상 대신, 자신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영상들이 다시 이슈화가 되었다.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핑크 플로이드의 어나더 브릭인더월의 뮤비와, Les Miserables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영화 장면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영상들도 다 사라졌다. 그들은 영상들을 대신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표현하고 있지만, 전혀 들으려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이번 락다운을 계기로, 미국은 상해 영사관 직원 및 가족들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고 글로벌 기업들의 속속들이 탈중국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기업뿐 아니라 주변에서 봉쇄 해제가 되면 중국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중국 사람들조차도 상해를 떠나야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상해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 복합적으로 많은 것들을 느낀 계기가 됐달까. 다양한 짤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예전에 상해 산다고 하면 너무 좋겠다 라는 부러움의 시선이었는데 지금은 상해 산다고 하면, 불쌍해서 어쩌냐라고 말한다는 짤. 봉쇄를 할 수는 있지만 집행 과정에서 발생되는 극단적인 조치 및 문제 대처 방식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다. 나 또한 든 생각은, 도대체 지금. 2022년에 이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사람들의 인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아무리 이 국가의 체제가 이렇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개인의 인권이랄까. 진정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인이라는 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물론, 상해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이라고 해서 어떤 혜택이나 국가에서 받는 보장은 없다. 그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뿐, 우리나라는 이 정도는 아니라는 것) 일부 중국인은 스스로가 중국인이라는 게 너무 슬프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비통하다. 봉쇄가 도대체 무슨 상황을 만들고 있는 건지. 봉쇄가 만든 것일까 아님 원래 이런 곳 있었지만, 그동안 상해라는 도시의 화려함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이 봉쇄 정책을 통해 빠른 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일까. 사실 많아도 너무 많고, 내가 언급하는 건 정말 일부. 내가 받은 소식은 일부겠지, 전해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야기들도 많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자잘하게는 이런 상황부터 기업들의 탈중국, 경제 상황까지 정말 상해 봉쇄라는 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의 상해 Lockdown


   제로 코로나를 포기할 수 없는 국가에 스스로 와서 살고 있으니, 결국에는 그에 맞춰 나는 이곳에서 내가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이 안에서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람들은, 그래도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다. 확진자가 아니기에 평화롭게 잘 지내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문제없는 공간이 있고,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있고, 집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걸까. 부족함이 없이 생활해야 나눌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 있는 환경을 갖추고 사는 것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상황 안에서 슬기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그리고 내가 즐겁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찾는 것.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거나, 사진을 찍어 올리고, 이 글을 쓰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내가 한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겨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맛에서 느끼는 자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