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상해 경험하기 위한 이사
상해 온 지 어느덧 4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파견자들을 위한 숙소 생활로 시작해 두 번의 거주지를 거쳐, 2년 전 룸메의 제안으로 회사에 요청해 숙소를 벗어나 각자 살게 되었다. 그 당시 이사할 때 중국어를 잘하는 룸메와 함께 다니면서 알아보고 조선족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집을 구하고 계약을 했었다.
첫 독립할 때 시내로 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아직 회사 주변을 벗어나 혼자 생활할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그다음 해에는 금전적인 리스크와 주거 환경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미루고, 매년 선택을 미뤘었다. 내가 잘하는 선택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오랫동안 고민하고 인스타 Q&A를 통해 상해에 계시거나 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내로 가는 것이 상해를 즐기기 위한 경험치를 늘리기에 너무 좋다는 의견들로 이사를 가는 건 좋다고 생각했지만, 환경 대비 생활비의 증가가 너무 투머치 해지니까-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상해 집값은 1인 거주 기준 기본 100만 원에서 시작하는데, 기존의 120만 원대 월세에서 시내로 이사할 경우 150만 원대) 그러다 한 친구의 현실적인 계산과 결정적인 계기로 이사를 결심하고는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이사 2주를 앞두고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주변 지인을 통해 여러 부동산 중개인들을 소개받고 거의 매일, 매물이 나올 때마다 퇴근 후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혼자 발품 팔아 보는 시간이었다.
이번 이사 준비를 하면서 강하게 든 생각은, ‘진정한 독립을 하고 싶어!’였다.
상해온 뒤 초기에는 회사의 도움, 그 이후에는 중국어 잘하는 친구의 도움, 매번 타인의 도움을 통해야만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항상 타인의 뒤에 숨어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달까. 타국이고, 언어적 문제로 항상 보호 아래에 존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지금도 안전한 게 중요하니까 보호 아래에 있다) 하지만, 그게 계속 타국에서 혼자 서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았다. 이사 한 번 하는데 참 거창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모험 없이는 성장도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항상 안정적인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격리 생활을 장기화하면서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강해졌고, 내가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그게 내년이 될 수도 있고, 내 후년이 될 수도 있는데 상해 시내를 경험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드디어 움직일 결심이 들었달까.
지금도 완벽히 중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도전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강해졌고,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좀 더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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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결심하고 발품 팔고 다니면서 진짜 시내의 컨디션은 이렇구나. 정말 기본적으로 멀쩡하다 싶은 아파트의 컨디션은 기본 월세 2백만 원을 훌쩍 넘어서 나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고, 그래서 상해에서 사는 사람들은 룸 셰어가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을까 싶다. 돈 있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환경과 아닌 사람들의 극명한 환경 차이를 실감하고, 내 수준으로써 최대한 현실적인 방 안으로 찾아다녔다. 물론 이 금액으로 교외에 살면 쓰리 룸의 좋은 집에 살 수 있다. 시내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한국과 중국의 같은 30년이 된 아파트라도 한국은 관리가 잘되어있는 반면, 중국 아파트에서는 그 3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실제 사용하는 곳을 새롭게 장식한다고 한들. 공용 공간과 엘리베이터, 계단에서는 그 세월의 흔적을 무시할 수 없고, 때로는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물론 그 환경에서 잘 사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난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덜 더럽고, 덜 무서운 환경을 찾으려고 했다.
내가 다른 건 포기하더라도 꼭 고집했던 3가지 조건은, 엘베 있는 아파트(자전거를 집에 두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 편해야 함), 50 이상 면적(일부 가구를 소유하고 있고, 작은 면적은 소화하기 힘든), 너무 오버되지 않는 금액 기준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13개 정도의 집을 보고, 도저히 이런 환경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셰어를 가거나 시내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마지막에 본 2곳의 집이 금액, 위치, 면적, 엘베 등 환경면에서 나쁘지 않았다. 14번째 집은 문 입구가 하나인데 방을 쪼갠 집으로 옆 방에는 프랑스인이 살고 있었고, 쪼갠집과 바닥의 나무 인테리어로 벌레나 관리 문제에서 조금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던 차 지인에게 소개받은 부동산에서 영상을 떡하니 보내왔다. 영상으로 보니 꽤 괜찮아 보여서 14번째 집은 고민한다고 한 뒤, 15번째 집으로 보러 갔다.
운명처럼 발견된 마지막 집이, 엘리베이터 환경이나 지하철에서 3분 컷, 금액, 면적 모두 적절했다. 다만 부엌과 화장실이 오래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여태까지 본 환경에서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선금을 내고,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집주인과 계약을 진행하던 날. 거의 면접과도 다름없는 과정이었달까. 집주인 자매님께 허락을 받아야 입주가 가능한 느낌이었다. 회사 명함 보여달라 하시고, 나이는 몇이고, 동물은 키우는지, 왜 이쪽으로 이사오려고 하는지 세세하게 물어보셨고, 집주인이 교수님인데, 자기 제자 중에 우수했던 한국인 학생이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있어서 인지 (이곳을 거쳐간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긍정적 효과로 덕을 보게 된, 나 또한 좋은 인상을 남겨줘야지 싶었다), 중개인 덕분에 올리신 월세보다 적게 내고 들어가서 이에 대한 불만은 있으셨지만, OK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서로의 신분증 확인하다 보니, 64년생으로 엄마와 동년배이셨던- 엄마 생각도 나고, 나를 JUHA 주하~라고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주시면서, 一定要注意安全啊 혼자서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해 라며 신신당부하시던 말씀이. 괜스레 울컥했다. 이곳에서 회사 사람 이외 사람한테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이 있었나? 싶었다.
이사 준비하면서 인복이 많다고 느끼기도 하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상황들이 종종 있었는데 집에 보수할 일이 있어서, 수리 아저씨들이 오는데, 여자 혼자 있는 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같이 오겠다며 집주인 언니, 동생 분들 찾아와서 신경 써주시는 게 그래도 꽤 안전한 곳에 잘 선택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돈 쓰는 것에 인색하셔서, 아무런 수리도 해주시지 않으셨지만...)
그리고 친구 소개로 알게 되어 가끔 연락드리는 청소 아주머니께, 이번에 새로 이사 갈 집에 청소도 부탁드렸었는데, 아주머니가 오셔서 보시고는 이전 집과 새로 갈 집 비교해주시면서 화장실과 부엌은 예전만 못하다며, 가능하면 교체하거나 추가해야 할 것들 파악해주셨다. 버리고 싶은 가구들도 몇 있었는데 아주머니 덕분에 사람 불러서 편하게 처리도 했다.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니지만 크기도 가격도 not bad 출퇴근도 괜찮은 거 같다며 말해주시고, 그리고 넌 디자인 일 하니까 교외보다 여기로 와서 좀 더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게 좋은 것 같다며 말씀해주시고, 뭔가 이모처럼 이것저것 체크해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월세는 부담스럽지만,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었달까. 이사하고 다시 와서 정리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감사했던 이모님.
모쪼록 처음으로 발품 팔고, 혼자 가서 중국어 계약도 하고, 이사 예약하고, 인터넷 설치 및 보수 공사하고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 해결해 나가면서, 한 걸음 나아갔다고 느낀 계기가 됐달까.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지! 시내로 이사하다 보니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고, 진정한 독립으로 찐 상해 라이프를 즐겨야겠다!
*인스타그램 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