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by 꿀꾀배기


"청소가 거의 끝나기는 무슨, 이 자식아. 여기 또 처박혀 있잖아,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왁스를 잔뜩 발라 넘긴 머리가 번들거렸다. 거구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게, 분명 보고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는데..."

"변방 잡놈 보고서를 뭘 믿고 현장을 한 번도 안 왔어? 이 쓰레기 같은 녀석. 뭐 해? 빨리 네 할 일 하지 않고."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앞에 선 덩치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곤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듯 팔뚝으로 닦으며, 이쪽을 향해 시선을 날카롭게 던졌다.

“어이, 거기. 요 근방에서 나처럼 몸집이 커다란 놈 본 적 없나?”

나는 조용히, 입안의 음식을 서둘러 씹었다. 그새 조금 식은 것이 아쉬웠지만, 에너지바와는 견줄 수 없는 귀중한 풍미였다. 이들 역시 X 연구소와 관계된 자들임이 분명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남은 다리 튀김을 전부 입에 넣어야 했다.


뒤에서 가게를 훑어보던 중년의 남성은 불만이 많은 듯 꿍얼꿍얼 혼잣말을 했다. 그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잔뜩 걸친 장신구가 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E 구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복이나 편한 복장을 입고 다닌다. 그러니 가끔 저렇게 양복을 입고 나타나는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저렇게, 수준 낮고 더러운 곳에 더는 발 들이고 있기 싫다는 듯 한껏 불쾌감을 내보인다. 오늘만 벌써 두 명째다. 앞서 G에게 잔뜩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체면을 구긴 탓인지,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 저자가 몹시 같잖게 느껴졌다.

같은 인간이면서, 하등 다를 것도 없는 주제에. 마치 본인은 이곳의 사람들과 격이 다른 존재라는 듯이. 외곽 구역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대부분 저런 식이다. 도대체 무엇이 평등하다는 것인가? 어느 누가 저자와 나를 동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할까? 언제까지 같은 인간에게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가?

어쩌면 내가 저자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저 꼴을 보아라. 알량한 수준에서 남에게 보이는 품위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니, 보석으로 장식되어 빛나는 무거운 넥타이핀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넥타이가 이리저리 달랑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모르는 모양이다. 무슨 용도로 그걸 다는지도 모르면서. 저들에게 중요한 건, 그 물건이 얼마짜리냐는 것뿐이다. 가격표는 개나 소나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지표이니 말이다. 같잖고 우스운 일이다.



한편, 미스터 나인은 눈을 크게 뜨며 닦던 잔을 내려놨고, U는 긴장한 듯 낯선 자들의 동선을 주시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들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X 연구소의 관계자들이 은밀히 다가와 실험에 관심이 있냐며 명함을 건네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들은 평범한 체구의 낯설지 않은 인상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와는 달리 거구의 불청객들이 X 연구소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둘은 유추해 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둘에게 말했다. “저들, X 연구소 사람들이에요.”

U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두 덩치가 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뭔가 아는 것 같군.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갈색의 부스스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거구의 여성이 말했다. U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 당신들은 나랑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어. 당신들이 연구소 어쩌고란 말이지?”

U 또한 노동자들 사이에선 건장한 체격인 편이지만, 두 거인 앞에 서니 오히려 조금 왜소해 보였다. 그러나 U는 아랑곳하지 않고 둘에게 몸을 들이밀었다.

“피실험자들은 어디에 있지?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부 말해.” U가 호통을 치듯 말했다. 뒤에 있던 양복 차림의 남성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글렀군, 글렀어. 일 처리를 얼마나 개판으로 했으면, 말단 놈들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질 않나, 고작 노동자 구역 하나도 빨리 못 밀어서 나를 여기까지 내려오게 만들지를 않나. 이젠 웬 잡놈한테 별소리를 다 듣는군.”

두 거구는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 할까요?” 남자 쪽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넥타이를 다시 조여 매며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걸 물어봐야 알아? 이놈들 당장 정리하고, 내일까지 E 구역에 파리 새끼 하나 안 보이게 해. 어차피 몇 명 남지도 않은 거 그냥 들어가서 밀어버리라고. 알겠어?”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쿵쿵 걸어 나갔다. 남아있는 둘은 약이 바짝 오른 표정이었다. 그들의 분노 찬 시선은 그대로 U에게 돌아갔다. 둘은 씩씩거리며 U에게 다가왔다. 뒷걸음질 치는가 싶던 U가 갑자기 그들에게 돌진했다.

그는 거대한 남자의 턱에 빠르게 주먹을 꽂았다. 불시에 가격 당한 남자는 턱을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U는 멈추지 않고, 정신이 나간 짐승처럼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옆에 있던 여자가 커다란 팔로 U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U는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여자는 곧바로 몸을 숙여 엎어진 U의 머리칼을 쥐고 들어 올렸다.

“암만 맞아도 맞아 죽지를 않으니 사람들이 꽤 대범해졌지. 그런데 말이야.”

그녀는 U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 바닥에 연신 내리 박았다.

“재생이 느린 뇌를 박살 내면...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하지. 그때 어디 깊숙한 곳에 묶어놓는 거야. 그동안 영양 공급이 끊기면, 재생은커녕 몸이 말라비틀어지거든. 너한테 곧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거야. 너희 둘도 마찬가지고.”

U는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이미 정신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는 터질 듯이 시뻘게진 얼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얼굴의 온 구멍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두렵다거나, 끔찍하다거나 하는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미스터 나인이 부엌에서 가져온 칼을 들고 뛰쳐나가 여자의 목덜미에 칼을 내리찍을 때도, 그 칼이 튕겨져 나가고,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는 미스터 나인을 여자가 비웃을 때도, 정신을 차린 남자가 분노에 사로잡혀 미스터 나인의 머리를 잡고 벽에 쾅쾅 들이받을 때에도 나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냥,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고, 어차피 내가 생각한 대로 흐를 꿈.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장면이 우습게만 보였다. 마치, 잘 짜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거구의 두 사람은 그런 나를 내버려 둔 채 그들이 잡고 있던 인간들을 마저 처리했다. 마치 내가 두려움에 정신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U가 완전히 망가진 것을 확인한 여자가 그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게 걸어왔다. 심지어 이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별다른 근거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다가오는 두 거구가 갑자기 풀썩 바닥에 고꾸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끼로 밑동이 난도질당한 통나무처럼,

지금 이렇게,

힘없이 옆으로,

쿵,

하고 말이다.

그리고 쓰러진 거구의 뒤에는 하얀 손에 주사기를 움켜쥔 작은 살인자가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이렇게, 내 앞에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가게 안은 숨죽인 채 고요했다. 거친 숨소리와 피비린내가 공기를 타고 흐르는 사이, 그녀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바닥에 쓰러진 이들을 원을 그리듯 둘러보며, 톡톡 발끝을 튕겼다. 낙서처럼 흐트러진 자수가 놓인 남색 니트, 커다란 투명 뿔테안경. 오늘따라 그녀는 더없이 천진해 보였다. 그 순진무구한 외양이 지금 이 광경과 더욱 불협을 이루며, 미묘한 도취를 일으켰다.

그녀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더니, 곧 정신을 잃은 중년 남자를 끌고 다시 들어왔다. 그의 정장 위로 먼지가 쌓이고, 무겁게 처진 머리는 바닥에 질질 끌렸다. 그녀는 남자를 가게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들뜬 숨결을 따라 커다란 안경이 조금씩 들썩거렸고, 그 너머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일을 벌일 작정이었다.

쓰러진 사람들을 가게 한가운데로 모아 놓은 그녀는, U에게도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미스터 나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순진한 표정으로 돌아와 이어서 주사를 놓았다.

그녀의 눈에는 모두가 똑같은 놀잇감일 뿐이었다.

바닥에 드러누운 중년 남자를 보니 쿡쿡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잔뜩 건방을 떨던 그는, 이제 혀를 내밀고 축 늘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복부는 기름기로 가득 절어 있고, 목덜미는 권위를 단단하게 껴안은 남자. 아마 어느 정도 높은 지위에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무거운 존엄성을 부여받는.

하지만 위선적인 존엄의 베일은 그녀 앞에서는 덧없다. 초라한 넝마처럼 힘없이 찢겨 버린다. 바닥에서 차게 식어가던 노동자 여성의 머리나, 반짝이는 장신구를 걸친 저 남자의 머리나─ 잘리고 나면 결국 같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축 늘어진, 이름 모를 고깃덩어리. 원래라면 저들을 향한 손짓 하나는 곧 불법이 되고, 상상하는 것조차 금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전복된다. 이런 ‘평등’은, 상상에서나 그치던, 마치 꿈만 같은 일이었다.

작은 살인자는 언제나처럼 분홍색 장미 모양의 흡연 기구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금속 재질의 꽃잎이 식당 조명 아래 반짝였다. 마치 장미 한 송이를 물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매혹되었다. 그녀는 하얗고 빽빽한 연기를 내뿜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입에 흡연 기구를 가져다 댔다. 입가에 쇠붙이의 찬기가 느껴졌고, 난 그녀를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온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축축하게 적신 뒤에, 날숨을 내쉬며 연기를 뱉어 냈다. 강하게 튀어 오르는 스파이스 아래로 무거운 장미 향이 퍼졌다. 날카롭고 강렬한 향은 이내 풀잎 위에 맺힌 새벽이슬처럼 은은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홀린 듯이 안주머니에서 새 스케치북을 꺼냈다.

마치 꿈같은 순간이 그녀와 함께 찾아오면, 나는 그것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감각 하나하나가 물처럼 스며들고, 얼룩져 흐려지기 전에, 가장 선명한 상태로 담아낼 것이다.



그래, 꿈. 그녀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그녀는, 이상을 실현한다. 더없이 아름다웠던,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던 찬란한 보랏빛 감각이 온몸을 적셨다.



이건 꿈이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하지만 만약, 정말 이게 꿈이라면...

...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계속해서 그 꿈을 좇으면 된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면, 꿈은 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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