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주위로 피어오르는 맹렬한 보라색 아지랑이. 그 압도적인 감각의 폭풍은 실체가 없는 허상일 것이다. 사람이 유색의 아지랑이를 피워낼 수는 없으니까. 그것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서 본 어떤 환상이었으며, 밤마다 잠 못 이루며 갈구하던 나의 이상이었다.
그녀는, 그 자체로는 너무 붉었다. 그러니 그 위에 나의 파란 감각이 적절히 덧입혀질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행위 속 순수함과 잔혹성은, 바로 내가 그것을 감상함으로써 ─ 그녀의 드로잉에 과한 터치를 조금 걷어낸 뒤, 나의 감각 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 아름다운 걸작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완벽한 혼합 비율은 나의 감각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감각 속에서는 화려한 나비로서 날아오르지만, 세상의 눈에는 그저 잔혹한 범죄자일 뿐이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그래서, 자유를 잃을 위험 또한 컸다. 그녀의 행위는 명백한 중범죄였고, 발각되는 순간 체포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 그녀가 수려한 필치로 붓질을 해대고 있는 저 양복 입은 캔버스는, E 구역의 날파리들과는 다르다. 사라진 것이 확인되는 순간, 중앙 경찰이 움직일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찾아낼 것이고, 하늘거리는 작은 날개를 찢어버릴 것이다. 순수한 욕망만을 바라보는 검고 여린 두 눈을 파내고, 영원히 어둠 속에 가둬버릴지도 모른다.
끔찍한 상상이 등을 타고 내려왔다. 눈이 질끈 감겼다.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더욱 확신을 가졌다. 그녀의 과한 터치는, 내가 직접 마무리해 줘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저렇게 무턱대고 칼질을 해버리면, 작품으로 남을 수 없는 얼룩이 생겨버린다...
그러면 들켜버리잖아. 그러면, 네가 더는 내 앞에서 날아오를 수 없게 되어버린단 말이야.
하지만 너는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너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면 된다.
내가 이렇게, 네 옆에 있으니까.
작은 살인자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유희를 만끽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곁눈질했다. 나는 넋이 나간 채 그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흔적을 정리했다. 그녀는 풍선을 부는 광대를 보는 아이처럼 깔깔 웃었다.
피비린내 나는 이 도살장에서, 그녀는 연극이라도 하듯 몸짓을 일부러 크게 했다. 그럴 때마다 피와 살점이 사방에 튀었다. 커다란 오른팔, 치렁치렁한 보석, 누군가의 이빨, 발가락 따위가 날아다녔다. 그녀는 부엌으로 달려가 날붙이를 가득 안고 와서 바닥에 흩뿌렸다. 철제들이 서로 부딪히며 날 선 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씩 집어 들어 써보고는 아무 데나 내던졌다. 콧노래를 흥얼댔다. 그녀는 정말이지 신이 난 듯했다.
나는 그녀가 헤집고 간 자리를 뒤따랐다.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선을 긋고, 피로 얼룩진 천 조각을 들어 그림 그리듯 닦아내며 얼룩을 다듬었다. 내 시야는 초점이 흐렸지만, 손놀림은 오히려 감각적이었다.
대본 없는 연극의 여배우는 결코 한 덩어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손에 무언갈 쥐어도 하나를 진득하게 쓰지 못하고, 금세 싫증을 내며 등 뒤로 던져버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홍색 흡연 기구를 꺼내 물고 새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금세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은 듯 웃으며, 다음 놀잇감을 향해 떠났다.
그녀는 바 테이블로 뛰어가며, 발에 채는 것마다 이리저리 차버렸다. 칼, 살점, 의자 따위가 날아다녔다. 바 위에 남은 풀고기 다리를 마이크처럼 집어 들고 무대 위의 가수처럼 연기를 하다가, 입을 벌려 그것을 베어 먹었다. 왼쪽, 오른쪽 볼에 음식물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오물거렸다. 내용물을 다 삼키기도 전에 입을 벌려 맥주를 털어 넣었다. 꿀꺽, 모두 삼킨 다음 팔을 쭉 뻗어 잔과 접시를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고, 그녀의 웃음소리는 그보다 더 낭랑했다.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벽에 집어던졌다. 쾅, 벽에 부딪힌 목제 의자는 다리가 부러졌고, 튕겨 나온 파편은 멀리 날아가 잘린 채 세워 둔 몸통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덩어리는 비틀거리다 기울었고, 나는 황급히 달려가 그것을 붙들었다.
그녀는 그런 나의 행동을 흡족해하며 바라보았다. 한 번 치솟은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더욱 격렬히, 더 크게 움직일수록 나 역시 숨이 가빠지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갔다. 거친 숨결을 토해낼 때마다 그녀는 쿡쿡, 하고 웃었다. 그녀 역시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와이셔츠에 그려진 낙서처럼 장난기 어린 웃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우린 지칠 줄 모르고 서로의 열기를 원했다. 가끔 시선을 맞췄지만, 그녀는 금방 시선을 돌렸다. 나는 아끼던 검은 점퍼를 이미 벗어던졌고, 노랗던 장미 자수가 피로 검붉게 물들어버린 후드 역시 벗어서 저 멀리 던졌다. 드러난 흰 티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타임랩스 영상 속에서, 분홍색 흡연 기구가 무언의 춤을 추며 우리의 호흡을 이어주는 곡선의 리듬을 만들었다. 한 모금 들이마실 때마다 묵직한 연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 불필요한 감정과 상념을 파도처럼 쓸어냈다. 그것은 날숨에 코와 입으로 뿜어 나와 찌릿하고 고고한 장미향으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다른 꽃처럼 포근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오다가도, 이내 떫고 쌉싸름한 풀밭의 냄새가 축축한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그 품에 안기고 싶어질 때면 가시를 드러내듯 날 선 스파이스가 불쑥 튀어 올라 정신을 아득하게 흔들었다. 눈을 감고 입가를 혀로 훔쳤다. 녹슨 쇠처럼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잘려나간 덩어리들은 고풍스러운 원목 가구와 어두운 주황빛 조명 속에서 하나의 오브제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꽃밭이 새겨진 토르소들이 나비의 날갯짓을 닮은 검붉은 벽화와 어우러져 이 공간을 현실 너머의 기이한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그곳엔 옷가지를 풀어헤친 채 작품에 몰두하는 두 작가가 있었고, 그 장면은 기괴하도록 몽환적이었다.
그곳에는, 선악이 없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고, 너는 저 너머를 바라본다
내 손에 잡히지 않는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