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네가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네가 무언가를 사랑할 때, 비로소 그것에 대해 선명히 감각할 수 있게 돼. 이제야 세상을 아름답다고 느낀 건, 네가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온전히 이 세상을 감각하게 되었기 때문인 거야."
...
사랑.
무슨 향이었더라?
아무리 냄새를 맡아봐도 어떤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귓가엔 웅웅거리는 이명만이 가득하다.
손끝에 닿을 것만 같은 것들이 닿지를 않는다.
눈앞이 흐리고 세상이 캄캄하다.
난 이 세상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뿐이었다. 벽돌 따위를 주워 지나치는 모든 집의 잠금장치를 부수고, 그녀의 흔적을 애원했다.
여기도 아니다.
여기도.
여기도...
모든 집이 똑같았다. 칙칙하고, 어두컴컴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버려진 캡슐, 에너지바. 우리 인생의 표상이자 우리 그 자체.
그리고 우리의 말로.
이 세상에 우릴 위해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도 아니다.
여기도 아니고,
여기도.
모든 층을 확인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옆 건물로 향했다. 이곳에서도 모든 문을 부쉈다. 여전히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을 잃은 것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완전히 내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가 원할 때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나의 구원. 나의 계몽. 나의 소원. 나의 사랑. 나의 이상.
나의 의도. 나의 계획. 나의 본질.
나는 어디 있지?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여기도 없다.
여기도 없다.
여기도!
에너지바, 에너지바. 빌어먹을 에너지바!
포장지를 뜯고 베어 물었다. 잘근잘근 씹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질긴 벌레 껍데기 같은 이물이 입안에 가득 남았다. 이딴 걸 우린 지금까지 어떻게 먹고살았는가.
우리?
나는 E 구역의 노동자인가?
나는 쉘터의 예술가인가?
나는 살인자인가?
나는 위선자인가?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가?
알았다.
나는 꿈을 좇고 있다.
꿈에서 깨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깨버리면, 그건 한낱 꿈이 되어버리니까.
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나의 꿈은 어디에 있나?
내 꿈은, 무엇인가?
여기?
여기인가?
아니면 여기?
그리고, 나는 맡았다.
날 포근하게 감싸는, 무겁고 달큰한 꽃잎의 향을.
시야가 선명해졌다. 손끝이 끔찍하게 저려왔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이 들려왔다. 미묘하지만 분명히 그 향을 맡았다. 어디지?
401... 아니다.
402... 아니다.
그리고... 403.
11-214-403.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 향기.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어둡고 쌉싸름한 안개가 내린 새벽 풀밭에 섰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강렬한 스파이스가 가시를 드러내며 나를 찔러댔다. 나는 그럼에도 장미를 안아주었다.
고통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뚜렷하고 서늘했다.
그러자 꽃향기가 만개했다.
눈을 떴다. 방 한가득 약이 든 박스가 쌓여 있었고, 한쪽 벽엔 날붙이가 잔뜩 걸려있었다. 바닥엔 그녀가 거닐던 정원, 분홍색 흡연 기구가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그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