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로 쓴 나의 시간

15년 헤어디자이너의 기록_3부 전환과 도약

by Hommy

7장. 나만의 스타일 찾기_트렌드와 개성 사이


헤어업계는 언제나 빠르게 변한다.

새해마다 올해의 컬러라며 발표되는 컬러로 염색약이 출시되고, 유행하는 커트나 스타일이 생겼다 사라진다.

SNS 속 인플루언서나 인기 아이돌의 머리를 바꿔 나오면 다음 날부터 미용실에는 같은 스타일을 요구하는 괙들로 가득했다.


나는 한동안 그 흐름을 따라가기 바빴다. 유행하는 컬러 레시피를 외우고, 인기 있는 커트기법을 연습하며,

"고객이 원하면 그대로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질문이 생겼다.

"나는 뭐지? 똑같은 머리 만드는 로봇인가."

일주일 중 하루이상은 하루 종일 똑같은 머리만 로봇처럼 찍어내는 커트와 드라이였다.

고객은 만족했지만, 나는 공허했다.

내가 디자이너가 된 이유가 단순히 연예인 머리 복사+붙여 넣기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정말 오랫동안 했다. 한 날은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털어놨다.

"진짜 재미없이 똑같은 머리만 해. 지겨워."

"우리도 그래, 근데 어떡해.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그러면 틴닝이라도 손님한테 어울리게 해 주는 게 어때요?"


누군가 해머로 머리를 쿵 때린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틴닝을 잘 사용하지 않았기에. 숱을 치기보단 층을 내어 스타일을 만들어줬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틴닝을 써보자는 생각 자체를 안 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바본가?'

그때부터 나는 고객에게 단순히 '유행하는 스타일'을 고객과 어울리는 나만의 해석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한 고객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는 볼륨매직이 유행이던 시기였는데, 하지만 나는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미용실에 잘 오지 않는다는 점과 매번 기장을 동일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볼륨매직은 한번 자르면 없어져요, 거기다 미용실 오시는 거 힘드시잖아요, C컬파마로 하시는 게 어때요?"

"C컬이요? 그거 너무 똥그랗지 않아요?"

"얼굴도 계란형이시고, 쌍꺼풀도 짙으신대, 볼륨매직은 제가 보기엔 너무 답답해 보일 것 같아요"

"그래요? 알겠어요. 해주세요!"


그렇게 모든 시술을 마무리한 뒤, 고객은 거울을 보며 말했다.

"맨날 볼륨매직만 했었는데, C컬도 자연스럽게 가 되네요~ 이게 더 나랑 어울리는 것 같아!"


그 말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단순히 유행을 잘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맞는 해석을 더할 때

비로소 나만의 스타일이 된다는 것을.


물론 나만의 스타일을 권하는 게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다.

어떤 고객은 "그냥 사진처럼 해달랬잖아요!"라고 말하며 실망을 안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위축되기도 했지만, 점점 알게 되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스타일은 없다는 것을.


중요한 건 나만의 철학을 지키면서도, 고객의 마음을 존중하는 균형이었다.

트렌드와 개성 사이. 그 사이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 스타일은 곧 나의 언어

지금은 고객이 내게 오면, 단순히 스타일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내 해석을 기대하는 경우도 생겼다.

"가르마머리 저한테 잘 어울리게 해 주세요! 근데 저 아침에 머리 손질할 시간이 없어요~"

유행을 따르되 고객에게 맞는 커트와 집에서도 손쉽게 스타일링이 되게 만드는 것.

"역시 선생님이 잘라줘야 내가 아침에 편해!!"

내가 만들어내는 한 줄, 내가 더하는 작은 디테일이 결국 내 스타일을 만든다.

그것은 유행보다 오래 남고, 고객에게는 '나만의 시그니처'로 기억된다.


✨ 트렌드는 바람처럼 빠르게 바뀐다. 하지만 개성은 그 사람의 얼굴과 삶에 오래 남는다.

나는 이제 유행을 따라가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고객의 개성 위에 나만의 해석을 더하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스타일, 나의 언어다.


✨ 매번 똑같은 스타일, 하지만 다른 얼굴. 이제는 어울리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의 느낌을 잡아가고 있진 않나요? 지겨울 수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고객에게 딱 한마디,

'더 잘 어울리시게 수정 조금만 해드릴게요'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작가의 이전글가위로 쓴 나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