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없는 엄마, 너는 그런 나의 아가 [1. ㅇㅅ]

내가?

by Hommy

2022년 12월 14일, ㅇㅇ산부인과.

"초음파 찍어보죠. 들어가서 준비하세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의자 옆 작은 커튼 뒤의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바지랑 속옷 다 벗으시고, 바구니 안에 치마로 갈아입으시면 돼요."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치마로 갈아입고, 들어왔던 반대쪽 커튼을 열고 나갔다.


오른쪽엔 세상 앉고 싶지 않은 개구리의자와 왼쪽엔 1인용 침대가 있었다.

"이쪽으로 머리는 저쪽으로 천장보고 누우세요."

어디로 가야하나? 생각도 전에 간호사 선생님이 침대쪽으로 안내해주셨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 천장이 하얗네.......'

'모든 천장은 데크가 다 똑같이 생겼구나'

'언제 오시는 거지'

여러 생각을 하다 내가 누워있는 공간 외에 다른 곳들도 두리번거렸다.

내가 누워있는 자리 반대편의 '개구리 의자'.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은 한번씩은 누워봤을 그 의자. 그 의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남자들은 결코 경험해 볼수 없는 정말 수치스러움이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는 의자다.

게다가 나는 2년에 딱 한번, 자궁경부암 검사만을 위해 병원에 와봤기때문에 특히 더 당황스러웠다.

산부인과에 오면 항상 개구리의자에 앉기만 했었는데, 천장을 보고 눕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왜 산부인과에 왔냐고? 그러게.

처음보는 기다란 몽둥이 같은 초음파기와 콘돔.

'저걸 넣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중에 의사선생님이 오셨다.


"다리 세우고 누워주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무릎을 접어 다리를 세우고,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초음파 들어가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멍하니 있다 쑥하고 정말 괴상한 이질감이 내 몸안으로 들어왔다.

"임신 맞네, 아기집 보이죠?"

누워 있는 내 시선에 딱 보이게 설치되어있는 천장의 모니터에 작은 동그라미 하나가 보였다.


"움직여요~"

동시에 이쪽 저쪽 내 자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초음파기가 움직였다.

"임신 맞아요, 지금이 4주 정도네. 자궁벽도 좋고, 자리도 잘 잡았고."

"........"

아무말을 할수가 없었다.

'....임신이구나.....진짜로...'


"아직은 4주차라 심장소리는 안들려요, 2주후에 아빠랑 같이 와요, 그때는 심장소리 들을수 있을거에요."

"아, 네."

"잠깐 기다려요~ 사진 뽑아줄게."

불편한 이질감이 내 몸에서 쏙 나간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시 옷 갈아입으시고,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 네."


평소라면 아 소리는 입밖으로 잘 내지 않았을텐데, 그날은 다 '아...'가 붙는 날이었다.

치마를 벗고, 내 속옷과 바지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축하해요, 이거는 초음파 사진. 아기집은 잘 자리 잡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세상에서 처음 받은 축하였다.


손에 쥐어진 초음파 사진 두장. 내 뱃속 사진인데, 참 이상했다.

"임신확인서 써줄게요, 그거 가지고 보건소 가서 임산부등록하고, 뱃지 받아서 가방에 달고, 차 있어요?"

"차요? 아니요, 아. 남자친구는 있어요."

"그럼 차번호랑 적어서 가요, 그럼 임산부타고있다고 스티커 줄거에요."

"아.. 네."

"밖에서 잠깐 기다려요~ 우리는 2주후에 아기 아빠랑 같이 봐요."

"아, 네."


진료실 밖 쇼파에 앉아, 초음파 사진을 멍하니 쳐다만 봤다.

임신이란 사실이 아직 얼떨떨하다.

임신테스트기로 이미 임신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의사선생님의 인해 완전히 확정지어진것같았다.

"이지윤님~ 이쪽으로 오세요."

[출산예정일 2023년 8월 15일]

'광복절에 태어나네. 엄청 덥겠다.'

그렇게 임신확인서를 받았다.


임신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으로 축하를 받아야 할 일임을 안다.

미혼인 나에게 임신은 사회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을수 있는 일임도 안다.


아직 대한민국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어르신들이 많기에,

특히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아직 젊은 20대의 여자가 혼전임신이라면 혀를 차실테니 말이다.

그 60대 이상의 어르신이 바로 우리 부모님과 외할머니일텐데, 거기다 이모까지.

머리가 아팠다. 이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임신을 했다고 내가 변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미 자식를 넷이나 키운 할머니가 보시기에 첫손녀인 나는 여전히 철없고 생각없는 어린아이이지 않을까.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어려웠다. 할머니에게 임신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집은 네 남매 중 첫째인 엄마와 두 형제 중 둘째인 아빠가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아빠쪽의 조부모님은 돌아가신지 오래였고,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키워주신 것이 엄마쪽 조부모님이셨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내내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나를 교문까지 데려다주셨다.

손에는 항상 천원짜리 한장과 함께.

"학교 끝나거든 맛있는거 사먹어, 혼자 먹지말고, 제일 좋아하는 친구 사주고."

내 부모보다 더 부모같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중학생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나의 보호자였다.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대학교 졸업식에서도.

모든 학교 행사에는 할머니가 참석하셨다, 이지윤의 부모로써.

심지어는 잘못을 했을 때도 할머니가 오셨다. 이지윤의 부모로써 허리를 숙이시러.

그런 나의 할머니를 가장 잘 아는 것이 나이기에 더는 속상하실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멈췄다, 나중에 미래의 내가 스스로 잘 해결하기를.


걱정보다는 지금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했음에.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국 난 세포인 너를 지켜보기로 했다.


과연 나는 이제부터 어떤 세상을 맞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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