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용사다. 벌써 경력이 15년 차.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이상했던 점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남자미용사들은 휴직 없이 쭈욱 일할 수 있는데, 여자미용사들은 임신하면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뒀다.
아이를 키워줄 가족들이 없어서는 아닐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연하게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게 당연시되어 버린 미용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 내 주변에.
임신 전의 나는 '임신해도 전날까지 일 해야지.' 그게 나의 미용사로의 다짐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한 미용실에서 오래 일하면 나를 찾는 단골고객들이 생기고,
그들로 인해 나는 벌어먹고 사는 입장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다 버리고, 심지어는 내 월급도 포기하고,
집에만 앉아 아이를 키우는 건 그 당시의 나에겐 세상에도 없는 고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선배들도 그랬다.
내가 봐왔던 선배들은 마지막달까지도 일을 했었다, 정말 딱 출산예정일 한 달 전까지 일했었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나에겐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자신을, 자신의 커리어를,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임신을 하니 바뀌었다. 그 이유를 찾아봤다.
잠이 너무 많이 오는 게 문제였다. 고객을 보내고 잠깐 쉬는 5분, 그 사이에도 잠이 들었다.
등받이도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1분도 채 되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들어버렸다.
무슨 겨울잠을 꼭 자야 하는 곰같이 8시 반 퇴근하면 9시 반에는 잠이 들어버렸다.
저녁밥도 건너뛰고, 씻자마자 바로 잠자기 바빴다. 내 반려견 현이는 나만 기다렸을 텐데 말이다.
또, 추웠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꼭 냉동고에 갇힌 사람처럼 추웠다,
몸과 이가 사시나무 떨리듯 계속 추워했다. 혼자 온열기를 독차지하고 앉아 있었음에도 춥다며 담요를
덮고서도, 웃기게도 그 와중에 잠은 계속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좋지 않았다.
화학제품이란 제품은 다 있는 미용실이란 공간에서 고객들이 춥거나 더울까 봐 설치한 유리창의 작은 환풍기 한대로 파마약냄새와 염색약 냄새, 암모니아냄새, 스프레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작은 9평 임대아파트, 내 방은 현관문 바로 옆 작은 한평 반정도의 작은 방.
특히 웃풍이 심했다, 비염을 달고 살긴 했지만 그래도 공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뜨거운 이불속에서 얼굴만 차갑게 하고 잠을 자니 오히려 잠이 더 잘 꿀맛이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나니 미용실 공기가 얼마나 탁하고 먼지가 많은지 깨달았다.
일하면서 고객들이 놀랐었다, 파마약을 장갑을 끼지 않고, 당당하게 맨손으로 일하던 내가,
"약제는 몸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아요.", "클리닉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일하던 내가.
어느샌가 샴푸도 장갑을 끼고 하는 것이었다.
출산 직전까지 일을 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 이후는 잘 몰랐다.
선생님들의 아이들은 장애를 갖거나, 선천병이 있거나, 기형이거나, 오래 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의사가 그랬단다, '화학제품을 너무 자주 만졌어요. 몸을 너무 혹사했어요,
미용제품 중에는 뇌를 기형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엄마가 만지고 맡는 모든 게 아기한테 영향이 있어요.'
우리에겐 항상 즐거운 일이었는데, 내 뱃속의 아이에겐 나쁜 영향을 주는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지키고 싶어서 그렇게 일을 그만뒀다.
평생 동안 미용 말곤 재미가 없었는데, 그만큼 나는 이 일을 사랑했었지만.
지켜보기로 했던 나의 작은 세포가, 어느새 나의 아이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