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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Oct 27. 2020

육아 독립군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결혼 후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하고 회사를 다니던 나는 신랑 회사 가까이로 이사를 가야 했다.

서울에 신혼집을 마련하면 좋았겠지만, 대출해서 신혼집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신랑 회사가 있는 지역이 집을 마련하기 더 수월했다.

신랑은 집에서 자차로 5분 정도 되는 곳에 회사가 있었고
나는 회사가 광화문에 있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편도 2시간 30분, 왕복 5시간이 걸렸다.

출퇴근 시간이 긴 나를 위해 신랑이 요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집안일을 담당했다.

아이를 낳고 회사 출퇴근이 어려워진 나는 회사의 배려로 재택근무를 했다.

양가 부모님께 우리 집에 와서 공동육아를 해달라고 부탁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을 여태 키워 결혼시키고 본인들만의 자유 시간을 즐기고 계셨고 친구들과 그동안 못 다녔던 여행을 종종 떠나셔서 그분들의 노년에 가장 젊은 시절의 자유를 방해하기가 송구스러웠다.

나는 낮 시간에 아이를 돌보면서 회사일을 했고,
신랑이 퇴근하면 그때부터 나는 쉬고 신랑이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했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전에는 품에 안고 일하면 돼서 오히려 더 편했다. 컴퓨터 앞에 아이를 안고 의자에 앉아 종일 일을 하면서 좁은 공간에서 불편할 아이에게 미안했다. 침대에 아이를 눕히면 바로 "엥~"하고 울어서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문제는 아이가 조금 더 커서 기어 다니거나 걸어 다닐 때 발생했다.
아이가 14개월 정도 됐을 때, 엄마 눈을 피해 한참 저지레를 즐길 때, 나는 컴퓨터 앞에서 회사일을 하느라 못 봤는데, 아이가 하얀 휴지를 마치 미라처럼 돌돌 말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 "휴지 가지고 놀았구나"라고 말하면서 정리해 주려고 아이에게 다가갔는데 휴지에 피가 묻어 있어서 너무 놀랐다.

미끄럼틀이 거실에 있었고 내 작업 공간은 안방이라 문을 열어놓고 거실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일을 했던 구조라 잘 울지 않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먼저 신랑에게 연락한 후, 미끄럼틀에서 부딪히거나 떨어진 건 아닐까 해서 아이를 안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진찰하면서 "눈이 좀 이상해요,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소견서를 써주셨다.


외관상으로 볼 때 눈에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씀에 온몸이 떨렸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진료받은 후 아이의 눈이 날카로운 어떤 거에 상처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다친 부분이 검은 동공 부분이 아니고 흰자위라고 했다.

만약에 다친 부분이 검은 동공 부분이었다면 아이의 시력에 큰 손상을 입거나 실명할 수도 있는 거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왜 다쳤는지 내게 물었고, 나는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다쳤는지 미처 못 봤다고 말했다.


내가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사실을 모르는 의사는 "아이가 다치는 것을 제대로 못 본 엄마가 엄마로서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병원이 떠나가도록 내게 호통을 쳤다.

그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미루어 짐작이 가지만, 나 또한 여태 마음 졸이다가, 아이 눈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막 벗어나 안도하면서 긴장감이 풀리고 있는데, 그만 의사 선생님의 호통에 놀라 주저앉아 울었다.

신랑이 옆에서 날 달래주며 나이 지긋한 의사에게 나를 변호하는 목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그 후 아이는 통원 치료하면서 다행히 시력도 문제없이 잘 회복했다.

아이가 다치는 걸 못 본 나는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고 회사일을 그만두고 전적으로 아이만 돌봐주고 싶었으나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은행에 대출을 받아놓은 상태라 내 월급이 계속 필요했다.

결국 계속해서 돈을 벌 수밖에 없었던 나는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고, 아이가 다칠 만한 장난감은 다 처분했다.

아이는 내 시선 안에서 밀가루를 가지고 한참 놀거나 큰 냄비 안에 들어가 놀 곤했다.

육아 독립군이었던 우리 부부는 함께 육아 전쟁을 겪으면서 서로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전우애도 생겼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가 될 수 있었다.


밀가루를 가지고 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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