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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Nov 02. 2020

내가 어떻게 구구단을 외우고 있어?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라일락 꽃향기가 만발하던

내 아이의 아홉 번째 봄날 이야기이다.


따스한 햇살과 라일락꽃향기가 어우러져 행복을 느끼게 하는 오후였다.

햇살 사이로 부는 바람결에 라일락 꽃잎이 여유롭게 흔들렸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잠깐 시간을 내어서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마중을 갈 수 있었다.
아이 친구 엄마와 함께 교실 부근에서 기다리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매우 조용했다.


보통 하교시간에는 마치 시냇물이 흐르는듯한 아이들의 경쾌한 멜로디와 선생님의 당부 목소리가 함께 뒤섞여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나곤 했는데 고요한 느낌이 적막하기까지 했다.


기다림이 조금 지루해질 무렵에 다른 아이들은 나오지 않고

내 아이 혼자서만 얼굴이 상기된 채 뛰어와 품에 안겼다.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내 아이만 나와있는 게 이상해서 난 질문을 했다.



"우리 딸만 나온 거야?"



"응, 선생님이 구구단 다 외워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하셔,
다른 아이들은 구구단을 못 외워서 집에 못 가,
그런데 엄마, 내가 어떻게 구구단을 외우고 있어?"
라고 아이는 대답했다.



내 기억에는 분명 학교에서 숙제로 구구단을 외워오라고 내준 적은 없었다.

오늘 처음 구구단 진도를 나간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나와 아이 친구 엄마는 당황을 하였다.





내 아이가 여덟 번째 여름을 맞이한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놀이로 계속 더하는 방법의 구구단 개념을 익히도록 했다.


나와 아이가 번갈아 가면서 말하는 게임방식으로 진행했다.

집에서 별도로 외우거나 손으로 쓰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공부한다는 느낌과 숙제 같은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집과 학원 사잇길을 오고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구구단의 진도를 나갔다.


엄마랑 게임으로 하는 아이는 틀려도 기죽지 않았고 어쩌다 맞으면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했다.


어느덧 더하는 방식의 구구단이 익숙해졌을 때

곱셈식의 구구단의 개념을 가르쳐 주었다.
2단부터 9단까지 어느 정도 다 외웠을 때는 다시 구구단을 거꾸로 하는 게임을 진행했다.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7개월 정도 되는 시간에 나와 아이는 재미있게 구구단을 길 위에서 외웠다.



아이는 그것이 구구단 인지도 모르고 게임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내게 "엄마, 내가 어떻게 구구단을 외우고 있어?"라고 물어본 것이다.



내가 긴 시간을 들여서 아이에게 구구단을 익숙하게 만들어준 이유는
무작정 암기식으로만 외우게 하면 아이가 수학에 대해 흥미를 잃을까 봐 염려되어서이다.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야 어떤 과목이든지
싫어하지 않게 되기에 나는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가 5살 어린이였을 때 피아노에 관심을 보여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됐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5살 아이에게 악보 보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하기에 한글부터 가르쳐 줬다고 한다.

내 친정 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한글을 반나절 만에 익혀와 서재에 있는 법전을 꺼내 들어 한문으로 쓰여있는 글자를 빼고, 건너뛰기하면서 한글로만 되어있는 부분을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세상에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천재"인 줄 알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집에는 부모님이 읽는 어려운 책들만 있어서 엄마는 나에게 어린이 전집 60권짜리 책을 사줬더니

내가 밤낮으로 외울 만큼 그 책들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잔뜩 기대감을 가진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 후 구구단 외우는 것을 가르쳤는데 너무 못 외워서 결국 "회초리"를 들고 말았다.

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못해도 너무 못했다고 한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줄곧 이어졌다.



공부함에 있어서 긍정적인 감정은
학습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고
지속성을 가져온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노력을 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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