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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un 14. 2021

손주를 기다리는 마음

아이와 함께 국어과목을 공부하는데 한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옥은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졌고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아이는 자꾸 이야기가 딴 길로 새어서 웃음이 나왔다. 간신히 그 부분의 공부를 마치고 아이가 대단원 평가를 풀고 있을 때 잠시 나는 "한옥에 대한 나의 추억"중의 하나를 떠올려 본다.

결혼 후 그다음 해 9월 초쯤 나는 신랑과 시골에 시할머니가 계신 곳을 방문하려고 출발을 하였다. 그때 9월 말쯤에 추석이 있었지만 양가 부모님들은 서울에 계셔서 시할머니를 따로 챙겨드리지 못하는 것이 내 마음에 걸렸다. 9월에 시할머니의 생신도 있어서 나는 겸사겸사 내려가는 핑계를 대었다. 나는 신랑에게 노는 토요일에 시골로 출발해서 다녀오자고 말을 했더니 신랑은 시골집이 한옥이라서 불편할 거라고 걱정을 하였다. 다행히 시할머니께서 거주하는 안채는 현대식으로 실내를 개조해 놓았다고 한다.

신혼집이 있는 수원 기흥에서 출발을 해서 시골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거의 도착할 즈음에 시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할머니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던 나는 마을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시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애잔했다.

시어머니는 시할머니를 어려워한다. 시할머니께서 엄격하여서 시집살이를 많이 하신 시어머니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굳이 추석이 되기 전에 시골에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시어머니는 조금 걱정을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며느리가 혹여 시할머니에게 책잡힐 일을 하고 오지 않을지, 살림을 전혀 못하는 며느리가 주방에서 사고를 치면 어떻게 하나라고 마음이 불편하신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결혼식 때 뵙고 처음으로 조금은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신랑이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내려가서 놀았다는 곳에 가보고 싶었고 홀로 지내고 계시는 시할머니께서 얼마나 손자가 보고 싶을지 생각이 들어서 "무모한 도전"을 하였다.


© ajs1980518photography, 출처 pixabay


마을 입구에서 시할머니를 발견한 우리는 차를 세워 내려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갔다. 집 앞에 내려서 처음 본 장면은 정말 "한옥"이었다. 기와가 하늘로 높이 치솟아 있어서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렸다.



©ajs1980518photography, 출처 pixabay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와 담장 너머로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 시할머니 혼자 계시는 곳이지만 내 시선이 닿는 곳곳마다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절을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시할머니께서 거주하는 곳은 현대식으로 실내를 개조했지만 나머지 한옥들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 손자와 손자며느리가 온다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으신 모습에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는 주방에 절대 못 들어오게 하는 시할머니는 신랑이 주방과 마루를 오가면서 거들어도 "요즘에는 다 이러냐"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웃으셨다. 결국 설거지도 신랑이 하였다. 내가 하려고 했지만 설거지하다가 손을 벤 적이 있는 나를 못 믿어서 신랑이 나섰다.

그 사이 호기심이 많은 나는 집안 곳곳을 누비면서 문으로 보이는 곳은 다 열어 보고 만져 보았다. 시할머니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해주었고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나는 연신 질문을 해대었다. 마치 한옥을 탐방하러 온 학생처럼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내가 귀엽게 느껴지셨는지 시할머니는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웃으셨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작은 한옥집처럼 보이는 건물을 발견한 나는 시할머니에게 질문을 하였고 조상님의 위패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 옆에 소나무와 밤나무들이 있었는데 떨어져 있는 밤송이를 처음 본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너무 귀엽다고 손으로 덥석 만져버렸다.


© Nietjuhphotography, 출처 pixabay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가 연두색이었는데 내 눈에는 귀여운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할머니께서 나를 말리기 전에 이미 밤송이를 손으로 만져버린 나는 밤송이에 찔렸고 할머니의 걱정을 들었다.

결국 신랑이 내 손을 찬찬히 살피면서 가시 같은 것이 박혀있는지 잘 보아주었다. 나는 시할머니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나와 신랑이 떠나는 날 시할머니와 나는 손을 잡고 마을 입구까지 함께 걸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서 시할머니를 안아드리고 얼른 들어가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가는 것을 보고 들어가시겠다고 해서 한참 실랑이가 길어졌다. 결국 나와 신랑은 할머니를 다시 한번 더 안아드리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출발을 하였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모습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마을 입구에 서 계셨다.

우리의 방문은 혼자 계시는 시할머니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시할머니는 자녀들이 모시고 살려고 해도 끝끝내 마다하면서 그 한옥을 내내 홀로 관리하고 지키셨다. 몇 해 전 기력이 약해져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시할머니는 그 한옥집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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