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도와주면서 날짜를 세다 보니 오늘이 6월 25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문득 아이와 함께 역사 교과서에서 공부한 한국전쟁을 떠올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갓난아이였던 그때 일어났던 전쟁은 나에게 역사책에서만 공부하고 지나쳤던 전쟁 이야기였다.
나의 청춘시절 독일에서 머물며 공부한 적이 있었다. 대학의 어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 유럽 곳곳에서 온 아이들을 만나서 함께 독일어를 공부하였다. 유럽의 아이들은 쾌활하고 수업 시간에 적극적이며 발표도 잘한다.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도 많아서 언어를 빨리 배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스페인 친구와 친했지만 그 시절에 동양인이 드물었기에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종종 질문을 받곤 했다.
같은 반 아이 중에 터키에서 온 남자아이가 있었다. 눈이 너무 크고 하얀 피부를 가졌지만 왠지 서양 사람보다는 동양인의 느낌이 많이 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머리 색깔과 눈동자가 검은색이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나에게 그 아이가 한국전쟁을 아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만 해도 한국전쟁이라는 단어보다는 6.25라고 기억을 해서 재빨리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그 아이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시고 지금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때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시다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그 아이의 표정에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아이도 한국 사람인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에게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워주신 할아버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꼭 전해달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에 관련된 기념품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가방 안에서 인사동에서 구입했었던 접어지는 대나무 한지 부채를 꺼내어 선물로 전해달라고 그 아이에게 주었다. 그렇게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낸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잊고 살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당연하게 내 것인 것처럼 나는 그렇게 이 자유를 누린다. 가끔 아이와 역사 공부를 할 때 연관되어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 감사히 생각하지만 다시 잊고 지내게 된다.
얼마 전 나는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유 키즈 온 더 블럭)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분들을 일일이 찾아가 기념사진을 찍어서 액자를 만들어서 선물로 드리는 사진작가(라미 작가)를 보았다. 한국에서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한 청년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기념사진을 찍어줄 때 참전 용사분들은 매우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출처 유키즈온더블럭, 라미 작가
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 사진을 찍을 때 눈빛에서 나오는 당당함과 자부심은 어느 한 민족의 자유를 지켜내 주었다는 자부심일 것이다.
사진이 든 액자를 받으면서 얼마를 지불해야 하냐고 청년에게 그 군인이 물었을 때 그 청년(라미 작가)의 대답은
"액자 값은 이미 69년 전에 지불하셨습니다"였다.
출처 유키즈온더블럭, 라미 작가
그는 자비로 지금까지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계속 이어져서 1400명의 참전용사분들의 사진을 찍어서 드렸다고 한다.
내 어학원 시절 함께 공부한 그 터키인 친구는 할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자랐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부끄러웠다. 내 나라의 이야기인데 나는 역사시험을 위해 공부만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이날이 되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려 싸우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