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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Oct 20. 2021

나의 청춘시절 어느 시점

© Malina Sirbuphotography, 출처 pexels

신랑과 아이가 분주히 각자의 사회로 떠나간 거실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하다. 나의 움직임이 없으면 조용한 공간, 내 움직임으로만 소리가 들리는 이 공간이 나는 참 좋다.



창밖을 내다보니 계절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 같다. 창문을 열어보니 찬 바람이 들어와 나는 놀라서 황급히 창문을 다시 닫았다. 가을이 한층 더 선명하게 다가와 있는 느낌이 든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나는 차를 우려내었다. 따뜻한 차의 온기가 거실 안을 채우는 듯했고 창밖의 나뭇잎은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 시간과 공간에 퍼지는 차향이 내 마음을 나의 청춘시절 어느 시점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꽃이 만발한 봄에는 늘 꽃밭에 들어가 꽃구경을 하면서 꽃에 취해서 춤을 주며 노래를 불러서 친구들이 정말 나를 창피해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버리지 못하고 항상 같이 다녔던 내 학창 시절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비 내리는 여름에는 그 빗물을 맨발에 느끼고 싶어서 신발을 벗어서 두 손에 들고 첨벙첨벙 빗물을 발로 밟아 대었다. 발가락 사이로 물이 스며들면서 튀어나가는 느낌이 좋았고 신발을 신지 않은 내 발이 자유로워서 즐거웠다.


© Taryn Elliottphotography, 출처 pexels

가을날에는 낙엽이 많은 곳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서서 보는 나무와 하늘, 그리고 앉아서 보는 나무와 하늘은 매우 달라서 나는 그 느낌을 즐겼다. 그나마 내 친구들이 기꺼이 나와 함께해 준 것은 가을날 단풍을 구경할 때 길 위 낙엽에 주저앉아 나무와 하늘을 보면서 가을을 느끼는 것이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도 정면에서 서서 보는 것과 옆에서 보는 것 또는 앉아서 보는 것에 따라 그림이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자연의 풍경이 그러하였다.



친구들과 낙엽 위에 앉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란 가을 하늘에 여러 가지 색을 잎은 나뭇잎들이 그려졌고 흔들리는 나뭇잎과 그 사이로 내려오는 가을 햇살은 가을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바람이 한 번씩 심술을 내는 듯이 세차게 불어오면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나뭇잎 비를 만들었다. 그 떨어지는 나뭇잎이 바람결에 흔들리면서 내려오는 모양이 참 예뻤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또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온몸으로 느꼈던 가을,


그 가을은 해마다 다시 나에게 온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동일한데


문득 청춘시절의 어느 시점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는


다른 가을을 맞이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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