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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Aug 18. 2021

내가 믿는 대로

© dougandpetegardeningphotography, 출처 pixabay

나는 청춘시절에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잠시 머물렀었다. 내가 있었던 독일의 작은 도시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곳이었고 그곳의 대학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인은 내 기준으로 조금 특이했다. 그는 행동과는 다르게 외모는 평범했고 나보다 한 살이 많아서 친구처럼 지냈다. 나는 독일어로 소통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는데 그는 듣고 말하는 것에는 힘들어했다. 다만 읽고 쓰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가 통역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내가 종종 동행하게 되었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동질감은 한국이 아닌 곳에서 서로에게 도움의 손길을 당연하게 주게 된다. 그렇게 그와 시간을 자주 보내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난하게 지나가는 상황이 그에게는 독일에서도 고단했다. 다른 유학생들이 10년이 넘게 독일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겪지 않을 고단한 일이 그에게는 폭풍처럼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안타까워서 열심히 통역을 하면서 그를 도와주면서 문제 해결을 했고 그에게 이 모든 상황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힘든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한국의 어느 국립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얼굴을 보고 삶의 여정이 고단하겠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관상과 사주 보는 방법을 할아버지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삶의 여정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서 피해 가라는 할아버지의 뜻이었다고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 관상이나 사주를 믿지 않고 성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나의 미래"가 궁금해져서 지속적으로 관상이나 사주를 봐달라고 그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내 것은 봐주지 않았다. 그의 말로는 가까운 사람에 관한 것은 봐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만 남겼다.



관상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관상은 한국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는 유럽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알아맞히었다. 나도 놀라고 유럽 아이들도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한 번은 그에게 "사람의 사주나 관상이 대부분 정해져 있는 거라면 내가 내 삶에서 부단히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아?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 생각에 운명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또는 노력해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내 삶의 여정이 그 정해져 있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아이들의 관상이나 사주는 잘 만 봐주면서 내 것은 계속 봐주지 않는 그의 태도에 괜히 토라져서 한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대로 내 운명도 바뀔 수 있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타고난 운명이 있어도 본인이 노력을 한다면 그 타고난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청춘시절이라서 그의 말의 깊이를 잘 모르고 지나쳤던 것 같다.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내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 있는 말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꿈이 있다면


나 자신을 믿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날


내가 그리던 나의 모습이


내가 믿는 대로 현실로 되어 있는


그 순간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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