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하의 별 Nov 21. 2020

아이의 시선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앙상한 나뭇가지에 얼마 남지 않은 단풍잎이

바람결에 무심히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던

아이의 네 번째 겨울 이야기이다.

그때는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알기 이전의 상황이었고 또한 맞벌이를 해서 육아와 회사일, 그리고 집안일까지 챙기느라 평일은 전쟁 같은 나날을 보냈다.

힘든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도 집에서 밥을 한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도 고단한 일이었다.

보통은 집과 가까이 있는 백화점에 가서

아이를 키즈룸에서 놀게도 해주고
식사도 백화점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나에게는 편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말에는 백화점에 자주 가곤 했다.

백화점에 가서 식사를 마친 후 할 일이 없으면

의류를 구경하고 또 괜찮다 싶으면 구입하고 하고 그랬다.

아이가 마냥 키즈룸에서 놀기엔 비용이 계속 지출되기에 비용을 지불한 시간을 마치면 아이도 함께 의류 구경을 했다.

한참 의류매장을 걸어 다니면서 나와 신랑은 옷을 구경하고 또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입어보고 있었는데

우리와 잠시 분리되어 있던 아이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렸다.

왜냐하면 아이는 키가 작아서 디스플레이되어있는 의류들에게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어떤 언니가 옷을 다 벗고 있어요! 발가벗고 있어!" 라고 아이는 다시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백화점 안에서 옷을 다 벗고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을 했고

주변에 사람들도 모여들면서 산발적으로 웅성웅성거렸다.

아이가 말을 하는 거니 한치의 의심할 필요도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모여든 주변 사람들도 몹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 아이에게 황급히 다가갔는데 아이는 어떤 광고판 앞에 혼자 서 있었다.

"어디? 언니가 어디 있는데?"

"엄마, 여기 이 언니가 옷 다 벗고 있잖아요"라고 말하며 아이는 손가락으로 광고판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들어 광고판을 보니 거기에 어떤 여자 연예인이 속옷만 입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여자 속옷을 선전하는 불이 들어오는 광고판이었던 것이다.

아이의 눈에는 어떤 언니가 속옷만 입고 있으니 다 벗고 있는 걸로 보였나 보다.

아이는 다시

"엄마, 언니가 다 벗고 있어서 너무 춥겠다!" 라고 말했다.

"백화점 안은 따뜻해서 안 추워,  그리고 사진이잖아 진짜 사람이 아니고"

"엄마 그래도 언니가 너무 추워 보여!

내 코트라도 주고 싶어" 라고 아이가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사진 속 언니는 안 춥다고 한참을 설명하고 아이를 설득한 후에야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사건이 너무나 궁금해서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이가 귀엽다면서 웃고 다시 흩어졌다.

아이는 어른들과 다른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어른들이 무심히 넘기는 사진 속 언니도 아이의 눈에는 너무나도 추워 보이고


자기의 옷을 주고 싶을 만큼 아이의 마음에는 그 언니가 안쓰러웠나 보다.

어른들은 도대체 어떤 여자가 백화점 안에서 옷을 다 벗고 있냐고 궁금해서 모여들었는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