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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Nov 24. 2020

네 살 아이의 마음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앙상한 나뭇가지만 창밖으로 보이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던 아이의 네 번째 겨울 이야기이다.

오랜 전세 생활을 끝내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드디어 아이가 네 살 되던 해 2월에 우리 집으로 입주를 했다.


결혼 때 시댁보조를 받을 수 없었던 우리는 원룸을 얻으면서도 전액을 대출해야 했었다.
그 대출금을 다 갚기도 전에 아파트 분양받을 때 거대한 액수의 대출을 또 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대출금을 다 갚고 싶었다.
아이가 원하는 학원과 하고 싶다는 것을 마음 편히 시켜주려면 집에 대출이 많이 있어서는 맞벌이를 해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아이를 낳고서는 재택근무를 하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나의 일은 웹디자인 업무였기에 재택근무를 하든, 회사에 출근하든 업무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아이 돌보는 이모님을 고용하지 않고 하루 종일 나는 아이를 돌보면서 회사일을 병행했다.

업무시간에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내가 자유로운 시간에 일을 해도 된다고 회사에서 배려를 해줘서 신랑과 아이가 다 잠든 새벽까지 일을 하곤 했다.

더 많이 일을 하면 급여가 달라졌기에 대출을 빨리 갚고 싶어서 무리해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삶이 고됐으나 나와 아이와 신랑이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가지게 돼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내 아이가 네 살 때는 어린이집의 비용이 비싸고 국가의 보조가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그 돈도 아까워서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고 아이는 종일 집에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다른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점심시간에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가서 2시간 정도 놀다가 들어올 수 있었지만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아이에게 하루에 2시간의 외출은 너무나도 아쉽고 금방 지나가는 놀이 시간이었을 거라 짐작이 된다.

언제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는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엉엉 우는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나도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상황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던 것 같다.

겨우 아이를 달래서 집으로 들어와 오후 업무를 마치고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나면 나는 매우 지쳐 있는 상태가 되곤 했다.


신랑은 그때도 퇴근 시간이 늦어서 밤 11시쯤 들어오곤 했다. 신랑이 집안일도 육아도 잘하지만 평일 낮 시간에는 거의 없어서 나는 육아와 회사 업무로 지치곤 했다.


신랑이 퇴근하고 아이를 밤에 데리고 자면 나는 낮에 못한 업무를 새벽에 하는 그런 일이 늘 반복되었다.


어느 날 아이의 저녁밥과 씻기는 것을 마치고 나서 내가 거실 소파에 잠시 앉았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얼마만큼 잠을 잤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잠깐 단잠을 자고 나서 눈을 뜨니
소파에 누워있던 내 몸 위로 연두색 솜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나는 신랑이 퇴근했는 줄 알고 일어나서 찾아보니 신랑은 보이지 않았고 아이는 안방 침대에 이불도 없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누가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을까 너무 궁금해서 신랑에게 전화해 보니 신랑은 집에 들어왔다가 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는 아이 키가 작아서 안방 침대에 올라가려면 까치발을 들고 등산하듯이 올라가던 시절이었는데 설마 아이가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구스 이불도 아니고 일반 솜이불이라서 꽤나 무거운데 안방과 거실에 있는 소파까지의 거리를 아이가 어떻게 이불을 날랐을지 상상도 안되었다.

아이가 잠을 자고 있어서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가 잠을 자는데 너무 추워 보였어, 그래서 내가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줬어"라고 아이가 말했다.

"이불이 많이 무거웠을 텐데 어떻게?"

"침대에서 이불 끝을 잡고 잡아당겨서 열심히 끌고 갔어"라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어떻게 이불을 끌어올렸어?"

"내가 소파에 올라가서 많이 이불을 올렸어!"라고 아이가 말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이 났다.

왜냐하면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작은 키로 무거운 이불을 끌고 올 때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까치발을 하고 소파 위로 올라와서 이불을 엄마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덮어주는 아이의 수고로움이 고마웠다.

엄마가 추울까 봐 안방에 있는 이불을 가져와 덮어 줄 생각을 했다는 것이
이 모든 아이의 행동과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다.



나만 힘들고 고단한 게 아니었다.



나 혼자 전쟁을 치른다고 생각을 했던 그 시간 속에서



아이도 나와 함께 같이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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