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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Oct 06. 2021

마음이 복잡할 땐

© Abdullah Oeztuekphotography, 출처 pexels

어쩌면 여름 같은 화창한 햇살이 비치는 날이었다. 아이는 등교를 하고 나는 거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신랑이 내려놓은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별다를 것 없는 가을날이지만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서 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가을이기도 하다.



분명 여유 있는 아침이었는데 나의 나이를 초월한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그녀는 아파트에서 나와 친하게 지내는 멤버 중에 한 명이다. 문 앞의 대파를 두고 갔다는 그녀의 카톡에 현관을 열어보니 대파 3단이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녀에게 전화를 하니 대파가 많이 생긴 그녀는 우리 멤버들 문 앞에 똑같이 3단씩 배분했다고 한다. 나의 멤버들의 친정과 시댁은 어촌과 농촌이 많아서 계절별로 농수산물이 택배로 오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친정에 방문을 했고 대파가 너무 많아서 우리 멤버 생각이 나서 차에 가득 실어 왔다고 한다.



웃음도 나고 어이도 없어진 나는 대파 3단을 낑낑거리면서 주방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으로 옮겼다. 대파 3단은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았다.


© Anna Nekrashevichphotography, 출처 pexels

나는 주식장을 열어서 주식 시세를 확인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주식 가격이 내려가고 있었고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신랑과 의논하고 투자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어서 빠르게 내가 매수할 종목에 가격들을 예약하고 주식창을 닫았다. 나에게는 대파 3단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여태껏 나는 한꺼번에 대파 3단을 다듬고 씻고 채 썰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에게는 "김장"같이 부담스러웠다고 말을 하면 아마도 김장을 직접 하는 분들이 웃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대파를 다듬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다듬고 반 잘라서 여러 번 깨끗이 씻어서 아일랜드 식탁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다듬고 씻어놓은 대파 3단

그리고 반복적으로 계속 채를 썰었다. 나는 칼질을 잘 못해서 파가 굵게 썰렸지만 음식에 들어가면 동일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굵게 채를 썰었다. 눈이 맵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코도 매워서 계속 코를 풀기도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단순 작업에 집중을 하였다.



대파 채를 썰면서 세 번 정도 손톱 끝에 칼이 잘못 닿아서 손이 다칠뻔하였기에 더욱더 채를 써는 행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나는 대파와 전쟁을 치르고 큰 지퍼백에 대파 채 썰은 것을 나누어 담았다.


대파 3단을 채 썰어서 넣어놓은 모양

냉동실에 얼려두면 아마도 요즘 요리의 재미를 내는 신랑이 요긴하게 사용할 것 같다.



아침도 먹지 않고 대파와 전쟁을 치른 나는 배가 고파졌다. 시간이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빵과 커피를 가져와서 거실 중앙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문득 오늘의 주식장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내가 오전에 예약 매수해 놓은 것들이 전부 체결이 되었다. 나는 낮은 가격 순으로 계속 예약을 해 놓은 것인데 얼마나 빠르게 가격이 내려갔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주식창을 닫고 몸을 움직여서 청소를 하였다. 나는 요리는 잘 못하지만 정리를 해서 집안을 깔끔하게 만드는 것은 좋아한다. 요리는 열심히 하지만 실력이 잘 늘지 않는 분야이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나는 곧 하교할 아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파가 많아진 나는 오늘 저녁 메뉴로 예전에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님이 "대파국"을 알려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달구어진 팬에 기름을 넣고 대파를 넣어 파 기름을 내고 고춧가루를 넣은 후 고춧가루 기름을 내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한 것이 기억나서 그대로 하였다.


백종원 님의 대파국에 두부와 청경채 그리고 순두부를 넣어서 내 맘대로 두부 대파국                                          

요즘 "동물성 단백질"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호주산 소 불고기를 많이 넣고 한참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면서 버섯류와 청경채 그리고 두부와 순두부를 내 맘대로 넣었다. 어쩌면 "냉파 요리"가 맞을 수도 있겠다.


간소한 식단이지만 아이가 맛있게 먹은 저녁 메뉴

아이는 오늘의 대파국+두부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나도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의 학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요즘 주식장이 좋지 않아서 마음이 별로였는데 뜻밖의 대파 3단이 들어와서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머릿속에서 주식에 관한 생각이 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장기 투자자라고 말을 하면서 단기간에 급락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로 예금과 적금으로 돈을 모았던 나는 총수익률에서 마이너스인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버텨내야만 하는 시간인 것이다. 내 힘으로 어떻게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막을 수 있으랴.



다만 그 폭풍우 속에서 버티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자꾸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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