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하의 별 Sep 29. 2021

예전의 일상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나는 햇살이 비치는 화창한 날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도 좋아한다. 비 내리는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어서 거실 창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놀랐다. 선선한 가을바람이라고 좋아했던 일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바람이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이러다가 가을도 없이 겨울이 오면 마음이 아쉬워질 것만 같다.

신랑이 아침에 커피를 내려서 텀블러에 담아두고 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신랑은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서 에스프레소로 내려놓는다. 나는 물을 적당히 섞어 아메리카노를 만들거나 우유를 데워서 카페라떼로 만들어서 마신다.

창문을 잠시 열어서 차가운 바람을 만난 나는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져서 우유를 데워서 카페라떼 한 잔을 만들어 왔다.

커피 향이 거실 안을 기분 좋게 채워준다.

그동안 아이가 중간고사 준비를 열심히 해서 그만하면 시험을 잘 볼 것 같은데 시험을 많이 잘 보고 싶은 아이는 마음이 불안한가 보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 loana Motocphotography, 출처 pexels

창밖의 비 내리는 소리와 아이의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조율되어 가을밤을 더 운치 있게 만들어 준다.

낮에 지인이 문 앞에 밤을 조금 두고 갔다. 본인도 선물 받은 밤인데 내 아이가 생각이 나서 조금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나와 신랑은 오래전에 집에서 군밤을 만들어 먹고 싶어서 군고구마를 만드는 냄비에 밤의 끝을 잘라 넣고 구웠는데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밤이 터진 적이 있다. 황급히 가스레인지 불을 껐지만 겁에 질린 나와 신랑은 집에서 밤에 관한 요리를 잘하지 않는다. 가끔 밤에 관한 요리를 할 때도 껍질을 깎아서 나온 밤을 사용한다.

오늘 내가 받은 밤은 껍질이 선명하게 있는 밤이었다. 나는 지인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고 회사에서 근무 중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밤을 어떻게 요리하면 되는지 물었다. 동생은 밤이 익을 때까지 삶은 후에 물을 버려내고 굽듯이 조금 더 돌려가면서 밤의 수분을 빼주라고 하였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는 용기를 내어서 동생이 말한 대로 밤을 삶았다. 동생은 20분 정도만 삶아도 된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 밤의 크기가 커 보여서 30분을 선택했다. 그리고 불을 약불로 한 다음에 밤을 돌려가면서 구워주었다.



밤이 아주 잘 삶아졌고 마치 군밤처럼 맛이 나서 나는 기분이 너무 좋다. 아이는 지금 수학 공부를 하면서 밤을 몇 개 간식으로 먹었다. 엄마가 삶은 밤이 아주 맛있다고 말하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부분 집에 머무르는 나는 계절감이 거의 없다. 거실에 두 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집에 있어도 계절을 느낄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밖에서 느끼는 기분과는 다른 것 같다.

오늘 선물로 받은 밤을 보면서 나는 "벌써 가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달밖에 안 남았다. 작년부터 올해 거의 2년을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일상에서는 최소한의 소비를 하면서 여행적금을 들어 그 적금이 만기 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12살 때 시드니를 시작으로 나와 내 가족은 런던과 프라하 그리고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일상에서 절약만 하지 않았다. 공부도 즐거워야 꾸준히 할 수 있듯이 절약 생활도 즐거워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은 절약 생활의 즐거움을 여행을 통해 받은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떠나는 여행은 나와 내 가족에게 행복을 주었고 일상에서 절약을 하면서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에도 속도감이 붙게 하였다. 마음이 즐거우면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결과도 오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은 나와 내 가족에게 즐겁게 절약하고 노후를 위해 종잣돈도 모을 수 있게 해 주는 동기부여를 톡톡히 해 주었다.


호텔과 비행기 표를 직접 예약하고 일정도 자유롭게 나와 내 가족에게 맞추어서 진행하는 여행이었다. 어쩌면 잠시 그곳에서 머물면서 살다 온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나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였고 나는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기관지 알레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서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아이의 학교 수업에 맞추어서 요일에 대한 감각만 남아 있다. 그렇게 작년과 올해 2년 동안 나는 유리성에 갇혀 지낸 것 같다. 아마도 거실에서 통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지내서 그런 기분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곧 먹는 코로나 치료제도 개발되어 나온다는 언론의 보도를 들었다. 백신 접종을 어느 정도 하고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나오면 정말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예전의 일상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가을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특별한 기차표를 예약한 것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