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있으면 나는 달력을 볼 필요가 없다. 매달 있는 휴일이며 생일 등 기념일이 오기 전부터 아이들은 '그날'에 대해 떠들어댄다. 생일이나 어린이날같이 선물 받는 날이 시끄러운데, 그중 가장 기대하는 날은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몇 주 전부터 아이들이 부산해진다. 트리를 꾸며야 하고 선물도 골라야 한다. 12월생인 둥이는 더 바빴다. 생일 선물, 엄마 아빠한테 받을 크리스마스 선물, 산타할아버지께 받을 선물 이렇게 세 가지나 골라야 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왜 엄마 아빠한테까지 이중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굳어졌고 매년 시즌만 되면 나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물 고르는 고통의 절반은 아이들이 나누어준다는 점이다.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오랫동안 고민했던 선물을 정성껏 카드에 적어서 트리에 걸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기대에 찬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몰래 주문하고 포장하려면 007 작전이 따로 없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야 할 선물은 정해진 규격에 맞추어야 해서 더 어렵다.(수염 붙인 빨간 옷 아저씨가 나눠주실 때 누구 선물은 너무 크고 누구 선물은 너무 작으면 안 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말도 안 되게 비싼 경우도 있고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럴 때는 온갖 감언이설로 다른 것을 적으면 어떠냐고 회유해야 한다. 갖고 싶은 것이 지난번 마트에서 본 '그' 뽀로로 인형이면 쉽지만, '비 인기 캐릭터 피규어가 포함된 장난감 세트'처럼 포괄적이면 국내 사이트는 물론 해외 사이트까지 뒤져야 한다.
힘들게 고른다고 끝이 아니다. 배송되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평소에 택배상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상자'에 환장을 한다. 아무 상자나 열어보기도 했고, 오래전에 한글을 깨쳤다는 것을 새삼 각인시키기도 한다. 택배상자에 상품명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좋지 않다. 혹시나 산타 할아버지가 네게 선물을 안주실 것을 대비해서 몰래 사두었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내어줄 수밖에 없다. 선물 하나가 날아간다. (아이고 내 돈, 아이고 언제 다시 골라.) 밤에 몰래 포장할 때는 포장지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참. 아이들이 다0소에서 본 포장지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많으니 포장도 일이었다. 남은 포장지 등을 아이들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 것도 늘 주의해야 했다.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온 세상이 협력해 산타가 선물 두고 가는 영상을 만들고 산타와 루돌프 이동 경로까지 제공하는 마당에 이 정도는 성의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올해 아이들이 잠잠했다. 12월 전부터 선물선물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인데 말이다. 생일 선물만 미리 고민해서 온라인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두었기에 주문해 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산타의 비밀을 눈치챈 건가? 아이들 대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아무도 '산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냥 묘한 기대감만 맴돌 뿐.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만약에 아닐 경우를 대비해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6학년 짜리 둥이야 물론 모르는 게 이상하지만 막내는 아직 한창인 3학년 아닌가!
확률은 반반,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날렸다.
"너희들 동심이 사라졌나 봐. 이제 산타 할아버지 안 기다리네!"
"아니에요. 우리는 착한 아이라서 산타할아버지가 꼭 선물 주실 거예요."
"맞아요. 저는 산타 할아버지 드시라고 생강쿠키 구워놓을 거예요. 재료도 다 준비해 놨어요."
둥이가 '동심'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감이 왔지만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산타 할아버지의 비밀을 노출하는 것은 동심파괴의 대표적인 예다.)
며칠이 또 흘렀다. 이제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안전하게 포장까지 하기 위해서는 최소 이틀 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이 누가 받아도 기분 좋을만한 초콜릿을 몰래 주문해 두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너희들 선물 진짜 안 적어?'
서로 마주 보는 아이들 눈빛이 흔들렸다. 이제야 확신이 들었다.
"아무래도 진짜 산타할아버지 안 오시려 보네. 너희들 알고 있지?"
아이들이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아빠가 산타인 거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알았어?"
"4학년때부터요."
"막내는?"
"작년에 아빠가 산타는 없다고 했어요." (뭐?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그런데 왜 믿는 척했어?"
"그래야 선물 받잖아요."
그랬다. 둥이는 2년을 속아주는 척했다. 막내는 모든 걸 일찍 깨치는 숙명대로 2학년 때 세상 이치를 하나 더 배웠다. 선물만 받을 수 있으면 언제까지고 더 속아줄 마음이었겠지만 귀찮음이 더 컸던 모양이다. 속는 척도 귀찮아진 사춘기 녀석들은 산타에게 보내는 카드를 적는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동심이 사라져서 산타할아버지 안 오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카드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산타 할아버지는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어른들과 어떻게든 선물을 받고 싶은 아이들의 합작품이었다. 다소 상업적이기는 하다만 꽤 근사하다. 십여 년 남짓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면서 행복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아침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나와서 산타의 흔적을 찾고 선물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의 얼굴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앞으로는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하튼 속은 시원했다. 이제는 선물 고르느라 썼던 수고도 줄고 지갑도 안전해질 거다.
굿바이 산타!
부디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