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날 마라톤 출전을 결심할 적엔 머릿속 그 어디에도 눈보라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늦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때라 추위에 대한 걱정도 없었습니다.
아침 6시 40분 현관을 나서며 꿈을 꾸나 했습니다. 굵직한 눈송이가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저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10km를 뛰어야 한단 말이지?'
돌이킬 수 없다면 미련은 끊고 전진할 밖에요.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사이 찬바람에 손끝, 발끝 감각이 멀어집니다. 그런데도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나는 꼭10km를 뛰고 말겠어!'라는 대쪽 같은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 못 뛰게 되더라도 대회장에는 가봐야지 않겠나 싶었어요.
버스-지하철-버스를 갈아타며 대회장에 가는 사이 다행히 눈은 그쳤어요. 질척거리는 바닥을 요리조리 피해 걸으며 대회장에 도착했지요. 저도 저지만 대회장에 모인 불굴의 참가자들을 보니 놀랍더라고요.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이 추위에 반바지라니'
두리번 대회장 부스를 돌며 물품보관소에 맡길 물건 담을 비닐도 챙기고, 뜨거운 우엉차도 한잔 받아 마시고, 참가자 대기실, 탈의실 천막, 간식 배부처 위치를 봐두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하의는 타이즈, 상의는 바람막이정도로 가볍게 입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일찌감치 패딩을 벗어서 보관소에 맡겼습니다.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패딩을 벗자마자 극한의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참가자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희미한 온기를 따라가다 보니 난로가 있더라고요. 어찌나 반갑던지. 난로 앞에 서있던 커플 사이를 비집고 난로 앞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제야 살겠더라고요. 몸의 앞면, 뒷면, 발가락, 손가락을 고루 녹이며 출발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난로를 떠나 출발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전해드릴게요.
찬바람을 많이 쐬었더니 온몸이 시리네요. 저녁으로 뜨끈한 굴국밥을 먹어야겠어요. 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고 속까지 뜨끈하게 데워주고, 든든하게 채워주는 보약 같은 밥 챙겨 드세요. 내일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