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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서른 둘

친절하게 웃긴 사과

by 주원

사과를 자르다가 어떤 장면이 생각났어요. 어제 시장에서 사과를 고를 적에 지나가던 행인 한분이 사과를 두어 개 집어서 살펴보시고는 "맛있는 사과네" 하시더라고요. 제가 바구니에 골라 담은 사과를 보시더니 그런 거 말고 이런 게, 밑이 옴폭하고 노란빛을 띠면서 고르게 붉은 게 맛있다고 하시며 본인이 골라둔 사과를 제 바구니에 넣으셨어요. 이런 건 맛이 없다며 몇 개는 꺼내셨고요. 저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래요? 아, 감사합니다."만 반복했더랬죠.


그러고 있는데 가게 직원이 와서는 다 같은 박스에서 나온 거라 똑같다며 눈치 주더라고요. 사과고수 행인은 그러냐며 멋쩍게 웃고는 가던 길을 떠나셨지요. 사과는 만원에 7개, 제 바구니 속 사과는 아직 4개, 사과고수가 떠나고 어쩌나 하고 서있는데 어느 틈에 온 직원이 요리조리 살펴 사과 3개를 골라 바구니에 넣어 주었어요.


어제는 날씨도 춥고 배도 고프고 정신없 지나쳤던 순간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난데없이 등장한 사과고수 행인1, 츤데레 직원1, 어리바리 한 손님1역에 저까지 셋의 조합이 이상하게 웃기고, 또 그분들의 친절이 뒤늦게 감사하고 그렇요.


사과를 먹을 때마다 이상하게 웃기고 난데없이 친절했던 때를 떠올려야겠어요. 그럼 사과가 더 맛나고 기분도 좋아지고 그럴 거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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