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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쉰 셋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by 주원

연극을 봤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예매를 했습니다. 후기나 정보를 더 찾아보지 않고 극장에 갔습니다.

연극적 상상, 분명 하나의 공간인데 이불을 깔아 놓은 곳은 방이 되고, 작은 욕조는 화장실 겸 욕실이 되고, 평상은 거실이 되는 상상과 합의. 캠코더를 이용해 관객을 등진 배우의 얼굴을 영상으로 비추고, 동시에 영상의 위치, 크기, 갯수를 변주하며 효과를 내고, 음악은 마음속 고무줄을 당겼다 풀었다. 매력적인 배우들의 몸짓, 절묘한 타이밍에서 오는 웃음, 찰진 말맛. 노래 한곡으로 웃기고 울리는 작가의 필력이 경이로울 따름. 또 보고픈 연극이었습니다.


메마른 씨리얼만 먹다가 싱싱한 산해진미로 잘 차려진 한상을 맛, 향, 식감까지 풍족히 누리며 배부르게 먹고 온 기분입니다.



시놉시스

우악스러운 할머니와, 남편과 사별 후 자식에 집착하는 엄마, 그들의 편애를 독차지하는 오빠까지. 재수생 은빈에게 가족은 고추 말리는 냄새 가득한 낡은 빌라처럼 쿰쿰하다. 은빈의 목표는 낡은 빌라를 떠나, 가족을 떠나 독립하는 것. 재수에 성공해서 지방대 치대에 합격하기만 하면, 아무도 나의 독립을 말릴 수 없을 테다. 그렇게 독립의 꿈을 키워가던 은빈은, 어느 날 제 복숭아향 립스틱이 자꾸만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만 보니 머리가 나만큼 길고, 한 번도 목소리를 크게 낸 적 없고, 어려서부터 만화 세일러문을 좋아했던 우리 오빠가 의심스럽다. 과연 은빈은 지긋지긋한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작품소개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에는 전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능있는 4명의 배우 김솔지, 남재국, 류세일, 박은경 배우가 함께합니다. 이번 연극에서 배우들은 하나의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놀이-연극의 ‘플레이어’가 되어 고정된 배역 없이 돌아가며 다역을 ‘수행’합니다. 시시각각 규칙이 바뀌는 공놀이처럼, 시시각각 역할이 바뀌는 연극놀이처럼, 플레이어들은 딸이 되었다가, 오빠가 되었다가, 다시 엄마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됩니다. 플레이어들은 젠더 스테레오 타입을 연기하다가, 다른 젠더를, 다른 연령을 연기합니다. 마치 장난처럼, 젠더와 연령을 유쾌하게 교차하며 횡단하는 배우들의 놀이-플레이는, 서로 다른 입장을 짐작할 수 있는 잊지 못할 연극적 체험이 될 것입니다.

출연진 및 제작진

작가: 서동민
출연: 김솔지, 남재국, 류세일, 박은경
무대감독: 김동영
조명디자인: 이경은
의상디자인: 조은실
음향감독: 남영모
드라마터그: 김지혜
기획: 강소령
그래픽디자인: 장한별
사진: 이지응
조연출: 전준구
연출: 강훈구
제작: 공놀이클럽

출처: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홈페이지,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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