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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여든 다섯

제철 당근 5키로

by 주원

당근을 5키로나 사보긴 처음입니다. 당근은 저와 그리 가까운 채소는 아니었습니다. 요리에 들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먹긴 했지만 직접 사서 요리에 넣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찜이나 카레에 큼지막하게 들은 익은 당근을 만나면 반갑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 당근라페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생으로 먹거나 요리에 넣는 게 아니라 살짝 절여 새콤달콤한 드레싱으로 버무려 놓으니 오독한 식감과 산뜻한 맛이 좋았습니다. 그 뒤로 종종 장바구니에 당근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당근에 유난히 검은 흑이 많이 묻어 나오는 때가 제철이라 했습니다. 물이 많고 달았습니다.


동료 중 한 분이 당근을 먹으면 변비에 좋다며 두유메이커에 당근주스를 만들어와 나눠주신 적이 있습니다. 죽도 아닌 것이 주스라기엔 수프에 가깝게 되직해서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의외로 맛이 좋았습니다. 당근을 익혀 갈으니 더 달고 단호박 같은 향이 났습니다. 그 뒤로는 저도 당근, 토마토를 살짝 익혀 사과, 매실청, 레몬즙을 넣고 갈아먹곤 했습니다.


당근을 안 사 먹을 때는 몰랐는데 국산 당근은 가격이 꽤 나갑니다. 큼직하고 좋은 건 서너 개만 담아도 금방 만 원이 넘습니다. 맛있는 당근을 좀 저렴하게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며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제주농장 직거래로 당근 5키로를 주문했습니다.


간식으로 꺼내 먹을 수 있게 잘라서 한통 넣어두고, 당근주스도 만들어 한통 넣어두었습니다. 당근을 다 먹기도 전에 벌써 시력이 좋아진 듯한 착각이 듭니다. 당근이 망가지지 않게 하나씩 신문지로 돌돌 말아 보관해 두고 실컷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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