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백

가뿐하게 비우기

by 주원

요즘 곳곳을 비워내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듭니다. 쓸모와 애정이 다했음에도 미련이 남아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 집, 하루 일과, 머릿속에 그득 합니다.


옷장만 봐도 닳도록 입어 역할을 다한 옷,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 그 밖에도 2년 넘게 꺼내 입지 않은 옷이 적지 않습니다. 책장, 서랍에도 당장 버려도 무방한 것들이 잔뜩입니다.


특히 냉장고에는 집에서 보내주셨으나 제때 소진하지 못한 김치, 장류, 말리고 얼린 오래된 식재료가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정성이 마음에 걸려 차마 버리지 못했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


가지치기를 하고 잘라낸 잎줄기를 버리지 못하고 흙에 꽂아두는 바람에 뿌리를 내려 새로운 화분에 옮겨 심은 게 7개나 됩니다. 계속 늘려가는 게 답은 아니다 싶어 화분 2개를 정리했습니다.


미안해서 불쌍해서, 정이 들어서,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서,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고 몽땅 끌어안고 사는 건 아니 될 일입니다. 비워두어야 그 사이로 바람도 드나들고 새로운 것들도 들일 수 있을 테니 차츰 정리해 나가야겠습니다.


가뿐하고 홀가분하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백 아흔 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