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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아흔 아홉

다정했던 옆자리 승객

by 주원

"이거 좀 드실래요?"

아침 일찍 멀리 가는 고속버스에 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 가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휴게소에 정차하고도 잠이 깨지 않아 비몽사몽 했지만 복도자리에 앉은 터라 창가 쪽 승객이 나갈 수 있게 자리를 피해 줘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승객들 행렬에 떠밀러 버스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휴게소를 둘러볼 마음이 나지 않아 버스 주변을 서성이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그 사이 연락이 온 것이 없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승객분께서 "이거 좀 드실래요?" 하시며 델리만쥬 봉지 입구가 제 쪽을 향하도록 밀어주셨습니다. 제가 머뭇거리자 "아직 따뜻해요." 하시며 수줍게 웃으셨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라 저도 어쩔 줄 몰라 어정쩡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네, 감사합니다." 하며 봉지에 손을 넣어 델리만쥬 한 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델리만쥬는 정말이지 따뜻했습니다. 맛도 달큰한 향만큼 달콤했습니다.


"편하게 드세요."

제가 델리만쥬를 다 먹고 나서도 한참, 봉지 입구를 제 쪽으로 향하게 두시고 불편하게 드시기에 "저는 이제 괜찮으니 편하게 드세요." 했더니 더 먹으라 권하시고 봉지에서 델리만쥬 하나를 꺼내시더니 "나는 이거면 돼요. 저는 다 먹었으니 편히 가져가서 드세요." 하시며 봉시를 통째로 건네셨습니다. 괜스레 제가 잘 드시던 걸 뺏었나 싶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어찌해야 하나 난처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으로 델리만쥬 봉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받아 든 델리만쥬를 안 먹고 가방에 넣어두기도 애매하고, 맛있게 잘 먹는 게 주신 분의 성의에 보답하는 일 같아서 옆자리 승객 분이 하염없이 창밖을 보시는 사이 델리만쥬를 하나씩 꺼내 다 먹었습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니 또 수줍게 웃어주셨습니다. 그 뒤로 2시간쯤 더 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바리바리 딸린 짐을 챙겨 서둘러 나오느라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헤어질 때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 몇 초를 놓쳐 후회가 남습니다.




4번 좌석에 앉으셨던 승객님, 나눠주신 따뜻하고 달콤한 델리만쥬 덕분에 저의 하루는 미세먼지를 뚫고 매우 화창했습니다. 다정하셨던 4번 좌석 승객님의 건강과 안녕을 빌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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