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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열 넷

게임의 덫

by 주원

게임이랑은 그리 가까운 사람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제 삶에 게임의 역사를 돌아보면 조금씩 했던 게임은 지뢰 찾기, 테트리스, 블록 맞추기류의 간단한 형식의 게임정도입니다. 게임 안에서 싸워야 하거나 상대편을 죽여야 하는 자극적인 게임에는 흥미가 돋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향이라 게임에서 이기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게임인간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광고를 보다가 홀린 듯 깐 게임을 몇 시간이나 했습니다. 밀, 보리를 키워서 사료를 만들고, 축산업을 해서 얻은 우유로 가공품을 만들고, 그걸 팔아서 돈을 벌어 사업을 확장하고, 마을을 조성해 노동력을 조달하는 게임입니다. 끊임없이 생산, 판매, 전략을 짜고 움직여야 해서 몇 시간을 매달려 있었습니다.


게임 안에서 손짓 한 번으로 5분 만에 자라나는 밀과 보리를 수확하며 느끼는 사이버 성취감, 한정된 밭에서 어떤 작물을 얼마만큼 심을까 궁리하고 실행하는데서 느끼는 사이버 유능감, 수확물을 팔아 생긴 사이버 머니로 사업을 농업에서 축산, 베이커리, 유가공, 면화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느끼는 사이버 효능감에 취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사이버 마을에서 간신히 나와 일상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열심히 사이버 마을을 가꾸는 동안 제 주방은 설거지 거리가 쌓여 엉망이 되어있었습니다. 게임이 정신적 긴장감도 풀어주고,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적당히'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정 시간을 정해두고 하거나, 절제가 어려울 것 같으면 정리를 하는 방을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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