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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스물 하나

늦깎이 게임 중독

by 주원

일주일 전에 <게임의 덫>이라는 글에서 게임앱을 설치했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간을 과하게 쏟고, 정작 제 생활에 소홀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지난 일주일 내내 더 깊은 덫에 빠져있었습니다. 3일 차에 앱을 삭제하기도 했었지만 다음날 바로 앱을 복구했습니다. 앱을 다시 설치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될 테니 자연스레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어'하는 자기기만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요즘 게임의 덫은 어찌나 견고한지 앱을 깔고 열자마자 로그인 절차도 없이 제가 앱을 삭제했던 그때 화면 그대로 복구가 되었습니다.



'너무 과하다', '게임을 그만해야 한다', '안돼'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게임이 주는 저세상의 감각, 끊임없이 성취하고 성장하는 재미에 빠져 점점점 더 주도적으로 집착하며 매달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은 계속해서 조금씩 어렵고 시간이 드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아이템을 사면 시간을 단축하거나 손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다행히 저는 결제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돈을 써야 하는 게임이구나'하며 시들해질 때 즈음엔 돈을 쓰지 않고도 활용할 수 있는 무료 아이템이 나와 다시 게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게임 속에 짜인 복합적인 장치는 제가 게임앱에 머무는 시간을 이어가게 유도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이해하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전에는 사람들이 왜 게임에 빠지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왜 아이템을 돈을 주고 구매하는지, 게임을 중간에 끊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왜 어려운 건지, 게임을 하다가 안 하면 왜 불안하고 초초해지는 건지, 그 속에 어떤 마수가 숨어 있는지 등등 이제는 아주 조금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또 하나 이해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집 안에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이 티브이에 나오는 걸 볼 때, 그렇게 되는 과정이 잘 상상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집에 있을 때 연신 스마트폰만 붙들고 온정신을 게임에 매달려 지내다 보니 그게 삽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실습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망조가 아닐 수 없지요.


오늘 아침에 게임을 삭제했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앱삭제가 아니라 계정삭제를 했습니다. 여기서도 알게 된 게임세계의 무서운 점은 계정삭제가 바로 되는 것이 아니라 15일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겁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변하면 돌아갈 수 있도록. 마치 '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오게 될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흥칫뿡입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그간 차곡히 쌓아두었던 설거지, 빨래, 먼지를 차례로 닦고 치우고 정리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집이 쾌적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일주일간 게임을 하며 수많은 시간을 스스로 삭제했지만 온정신을 쏟으며 게임세계의 무서움과 이후 밀려오는 허탈함을 알게 됐고, 현실보다 단순하고, 안전한 게임세계 안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제 성향을 마주하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게임 안에서도 성실하게 작은 것을 얻는데 몰두했습니다. 투입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써야 하는데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것에 매몰되어 오히려 일의 순서가 꼬이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때에 따라 하던 걸 멈추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게임하며 배웠습니다. 처음엔 게임하며 생긴 게임머니를 쌓아두고 쓰지를 못했습니다. 실패해도 잃을 게 없고, 없어도 그만인 게임머니인데 왜 지르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건지 제 자신이 답답했습니다. 나중에는 어차피 삭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쌓아둔 게임머니를 써보기로 했는데 게임이 훨씬 수월해지고 쓴 것보다 더 큰 성취가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또 게임을 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미래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된 것 같다는 게 제 대답입니다. 눈에 보이게 잃는 게 없다는 것이 게임세계의 장점이긴 하지만 손에 쥘 수 있는 걸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도 하거나와 세상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손해가 커서 앞으로는 웬만하면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혹여 다시 게임의 마수에 스스로 끌려들어 가고 싶은 때, 이 글을 찾아 읽어야겠습니다.



그동안 즐거웠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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