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달릴 결심을 실행하기까지 3일이 걸렸습니다. 가족들에게 익숙한 저의 캐릭터가 있다 보니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는 말이 쑥스럽고 어색해서 안 나오더라고요. 평소 저는 군것질 좋아하는 집순이 나무늘보를 맡고 있거든요.
이미지를 유지하며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달리기 빼먹는 날이 더 길어지면 다시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가족들에게는 긴 말하지 않고 슬그머니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2킬로미터 정도 뛰었더니 땀이 줄줄, 몸 곳곳에 피가 돕니다. 숨이 차는 신체적 힘듦보다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밀어내는 게 저는 더 어렵습니다. 해보니 달리기는 정신수양이네요.
뛰고 들어와 씻고 수박 한쪽 먹으니 쇼츠 볼 때랑은 다른 차원의 도파민이 싹 돕니다. 뭔가 뿌듯하고 개운하고 시원하고, 달콤한 보상 뒤 노곤함까지 딱 좋습니다.
아, 참! 가족들이 저의 평소 같지 않은 행동에 당황할 줄 알았는데 기우였습니다. 얼굴이 벌게져 들어온 저를 보고는 무슨 일이냐, 어디 다녀왔느냐? 물으시기에 달리고 왔다고 하니 그렇구나 하고 끝. 남은 연휴 동안 평소와 다른, 새로운 나무늘보로 지내도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