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Sep 16. 2024

여덟

나무늘보의 달리기

본가에서 달릴 결심을 실행하기까지 3일이 걸렸습니다. 가족들에게 익숙한 저의 캐릭터가 있다 보니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는 말이 쑥스럽고 어색해서 안 나오더라고요. 평소 저는 군것질 좋아하는 집순이 나무늘보를 맡고 있거든요.


이미지를 유지하며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달리기 빼먹는 날이 더 길어지면 다시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 가족들에게는 긴 말하지 않고 슬그머니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2킬로미터 정도 뛰었더니 땀이 줄줄, 몸 곳곳에 피가 돕니다. 숨이 차는 신체적 힘듦보다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밀어내는 게 저는 더 어렵습니다. 해보니 달리기는 정신수양이네요.


뛰고 들어와 씻고 수박 한쪽 먹으니 쇼츠 볼 때랑은 다른 차원의 도파민이 싹 돕니다. 뭔가 뿌듯하고 개운하고 시원하고, 달콤한 보상 뒤 노곤함까지 딱 좋습니다.


아, 참! 가족들이 저의 평소 같지 않은 행동에 당황할 줄 알았는데 기우였습니다. 얼굴이 벌게져 들어온 저를 보고는 무슨 일이냐, 어디 다녀왔느냐? 물으시기에 달리고 왔다고 하니 그렇구나 하고 끝. 남은 연휴 동안 평소와 다른, 새로운 나무늘보로 지내도 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일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