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성흡입

허벅지 사이

by 강홍산하

지하철에서 자력으로 허벅지 사이를 붙이고 앉지 못하는 여자 옆에서 숨소리도 못 내고 다소곳이 새색시처럼 다리를 모이고 있다 보니 원성을 받기에 충분한 쩍벌남의 민폐를 국가차원으로 근절시켜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 게시가 필요하다 체험적으로 통감한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시공간을 초월해 레퍼토리가 무궁한가 보다. 어머니에게 사드린 가스레인지가 설정온도를 넘어가면 자동소화 기능이 작동돼 불이 꺼지니 고장이 난 줄 알고 불나게 전화를 했다는 등 자기가 워낙 있어 보이는 얼굴이라 오해 아닌 오해를 산다는 등 정말 확인할 수도 없는 진상(眞相)의 근원이 입속에서 굴비 엮듯 쏟아져 나왔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고르는데 '아버님'이라 호칭해 기분도 엉망이었는데 여자들의 반격이 시작된 걸까?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고 이제는 지쳐 버렸다며 '그만 끝내자'는 얼음 비수가 아직도 가슴에서 얼얼 거리는데---. 시간이 겉돈다. 병마개를 열어 보려는데 돌려도 돌려도 헛도는 기분이다. 삶을 수치로 나타내는 기록이라면 눈꺼풀 깜박거림이 맥박수와 같은 오늘이다. 엄살 같은 통증은 이미 구원병이 대기한 걸 아니 안전한 비명이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전혀 다른 체취의 여자가 눈 앞에 서성이면 뻐꾸기를 날려볼까? 지금 내가 원하는 반응에 호응할 대상은 활자 안에 숨어 있다. 그녀가 가져다 놓은 생면을 끓여 국수를 먹으려다 풀처럼 풀려 버렸다. 오늘은 어지간히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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