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성흡입

간파당하다

by 강홍산하

"이야기가 죽음을 유예시킨다는 이런 설정은 필멸하는 인간이 지닌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데카메론) 시간을 무한으로 확장하게 만드는 스토리가 있는 인생에 언어보다 아름답고 깊이 있게 전달되는 청력이 아닌 시각을 통한 수화가 적합하다. "가령 코끼리가 새처럼 알에서 부화되는 것이라면, 알의 껍질 두께는 얼마나 될까?라는 어처구니 없는 계산, 알을 깨는데 필요한 화약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를 연구하는 키파 모키예비치의 사색 같은 과학자의 노고가 결국 의문에 의문을 더해가는 희망으로 가려 놓은 종결 없는 궁즉통 같다. '나 정도면 이 정도의 혜택은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쓰임을 통한 축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은 언제 사라질까? 오랜만에 비가 내려 신록이 짙어지고 선명하다. 머리숱이 휑해졌다는 형의 한 마디에 어미는 곱슬머리 파마를 한다. 집안의 물주인 형은 능력자다. 콩나물국에 비름나물 무침, 버섯 양파 볶음의 온기가 아직도 여전하고 내 이야기의 틈 사이를 메워가고 있는 그녀가 요즘 제멋대로라 눈치코치를 다 동원해도 당해낼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의 유예 없는 이야기 때문에 벅차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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