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의 산행은 소리마저 숨을 죽이게 된다. 신록의 안쪽은 '벽에 세워 놓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 같은 편안함을 안겨 준다. 솔직하게 '사물의 좋고 나쁨이나 가치의 높고 낮음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과 식견'에 다가서지 못해 별다른 표현을 할 수가 없는 내가 자궁 안의 양수 같은 느낌을 태아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인간은 체험하지도 못한 감정을 사실인 양 얼씨구절씨구 잘도 뽑아낸다. 숲 속의 까마귀가 활공을 하면서 바이브레이션을 섞어가며 경계심은 아닌 것 같고 자랑질이 분명한 울음소리를 메아리에게 전해준다. 등산로 안쪽에 노란 페인트 칠을 한 나무들을 보면서 그녀는 관리 차원의 관심 나무로 나는 벌목 예정표로 의견이 나누어지고 정답은 '다음'박사에게 확인 후 벌칙으로 딥키스 1회로 정했다. 나의 용의주도함은 언제나 번쩍인다. 하산 후 시장에 들러 콩물과 생면을 구입해 콩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미용실에 가기로 했는데 애매한 시간이 허리를 두른 지방처럼 빠져나가질 않는다. 현관문을 열어두어 민첩하게 벌칙을 사용할 수가 없었는데 어느 틈에 그녀가 문을 닫아 두었다. 심장 벅찬 일이 벌어지고 신록 같은 은총이 쏟아진다. 참고로 나는 머리 자르기 전에는 삼손이라고 착각했는데---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