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압박으로 나를 개조하려는 心事가 분명하다. 그네들의 입맛에 맞는 소모품으로 만들려 한다. 손쉬운 요구 같지만, 전혀 다른 기법이라 당혹스럽다. 시험에 들어선 저를 위해 지혜를 예비하소서! 지금까지 겪어 온 난관을 복기해 보니 가장 가깝다고 여겨 온 사람이 가슴을 아프게 만들어 놓는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편집되어 전달되었다. 아마추어는 순식간에 코너에 몰린다. 살아오면서 타인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한 벌을 지금 받는 것 같다. '교만한 마음에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긴' 무뢰가 용인되는 사회가 아니었다.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축복이다. 불규칙한 수면 리듬으로 생각이 많아지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고개를 한 번 숙이면 그다음이 편해질 텐데 그런다고 바보가 되진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숫자로 바꾸어 말할 수는 없다고 들쭉날쭉한 생각의 고삐를 만지작거리다 검지 끝 신경 쓰이던 벗겨진 피부를 정리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유튜브 '오보에' 연주를 듣는다. 내 평생 '악기' 하나 연주를 못 하니 언어보다 깊은 공감의 연대를 끌어낼 연결음을 얻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강렬하게 소망한다. 힘들고 지친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선물하는 거리의 천사! 멋지지 않은가? 팀파니를 손끝으로 문지르면 소리가 잦아진다. 정지가 아니라 숨죽이는 것을 느낀다. 나의 날숨에서 정맥혈 내음이 새어 나왔다. 단 몇 분의 갈림길 선택으로 길흉이 바뀌는 인생이다. 인간의 의지도 총량의 법칙에 지배를 받을까? 나의 모습을 '모든 분별이 소멸하여 확 트인 상태'인 타인에게서 보고 듣는 또 다른 내 속셈이 가증스럽다. 괄시를 당하고 있지만,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의 시간을 마련해 준 코로나 블루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