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무리가 여전히 깔끔하지 못해 한번에 끝낼 일도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겪는다. 옳은 일을 하려다 화평을 깨뜨리면 실행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바울은 독선적이다. 그가 지키고 행하는 것이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한 것이니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인간에게는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바울의 고집이 결국 예수를 사랑과 화목의 신으로 세웠다. 내 인격은 내 방법으로 굳어진 격식이다. 내 방식으로 내 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예수를 발판으로 내 뜻대로 살면서 축복을 얻기 위해 나는 지금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을까? '영과 진리로 예배' 말씀 안에 갇혀 있는 근원 주의가 시대정신을 옭아맨다. 예배의 자리가 예수의 임재이다. 학문으로 다가서는 종교인들이 교리에 엄격하다. 의인을 위해 징벌의 유예와 십자가로 대속 사역을 하신 하나님이 종말을 실행하실까? 바람이 차갑다. 식물원 안의 원예작물이 생기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의 감탄과 온기가 사라진 식물은 태양만 의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무더기의 국화류만 빛이 난다. 돈가스집 사이드 메뉴인 고추는 늘 씨가 검은색이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고정으로 나온다. 왕돈가스의 위상은 손님하고는 무관한 취향인데... 기분이 별로여도 식물원 근처에는 이곳밖에 없으니 방도가 없다. 세금이 체납되면 물권이 압류되어 공매를 통해 국가로 귀속된다. 불안한 미래를 불행스러운 사람들을 통해 극복하는 아이러니다. 인간에게 남겨질 유산이 유형만은 아니다. 새벽의 고요가 깊다는 걸 서서히 체감 중이다. '일련의 한정사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미래는 '아마도(probably)'의 사태 속으로 매몰되고 만다." 왜 maybe가 아니었을까? somewhat의 기운만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인간이 사랑스럽다.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는 호르몬이 성격이 아닌 성향을 바꾸어 간다. 앨빈 토플러는 12살의 행동을 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을 '미래의 충격' 중의 하나로 기술했다. 적확한 예측인데...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