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위법적으로 구성된 다른 방향의 범죄인들인데 그들을 미친개로 부른다. 사실 미친개에 물리면 대부분 사망에 이르고 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윤리적인 선악의 구별이 모호해진 자본사회에서 이제는 자신의 유익에 따라 권선징악의 적용이 달라졌다. 미친개가 선악을 기준으로 활약했을까?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움직였지만, 관객은 열광했다. 잠재되었던 욕망의 분출을 대리 만족하는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생의 신호등에 경고성 빨간불이 켜지는 걸 감사하게 느낀다. 통화 중에 안경다리가 부러졌다. 연결을 시도했지만 불가역적이다. 무엇을 제물로 삼아 영광을 얻을까? 종교나 정치로 다시는 대결 구도를 갖지 말자고 그녀와 극적 합의를 했는데... 당분간 싱숭생숭할 게 뻔하다. 국가는 결과물에 집착한다. 집행 달성도에 따라 농단(壟斷)이 가능하다. 남부군, 태백산맥... 대의를 위한 신념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나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죽음이 이어진다고 생각할수록 나는 협착한 궁지로 몰린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앞선 것이 있을까? 이념이라는 집단 광기에 힘없는 생명은 늘 하찮은 수단이 되었다. 도저히 욕망을 희망이라 속이면 안 되는 모순을 가르치는 교육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희망은 개별적이다. 그래서 하나의 목표가 아니다. "사람 앞에서 보였던 아량과 관대함이 씨도 없이 사라지고 전연 앙앙불락한, 까슬까슬한 성질"이 지독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게 먹이사슬의 정점이다. 옳지 않다, 좋지 아니하다, 해롭다, 적절치 아니하다, 쉽지 않다... '나쁘다'는 해석이다. 깃펜으로 펜싱을 한다는 표현으로 시를 정의한 문장을 읽을 때 나쁘지 않았다. 허투루처럼 헛된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