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으로 대림절을 맞이하는 주일이다. '주는 사랑이다' 삶의 메시지를 통해 일상의 거룩함에 대해 ㄱ 목사의 설교 중에 깊은 묵상에 빠져든 부목사의 달콤한 모습에서 연약한 심령을 전달받는다. 은퇴를 앞두고 ㄱ 학원 이사장 취임으로 발전기금 오천만 원을 시무 교회에 지원 요청을 했다가 거부당하자 결국 자기 돈으로 자릿값을 지불한 ㅇ 목사는 세상 이름값에 봉헌이 사용되는 것이 이웃의 구제와 헌신일까? 생업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한 바울을 보라! 예수는 비천한 자들을 위해 스스로 낮아진 왕이다. 교회는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을 모시어 섬기고 있는가? 예배가 끝나면 늘 반갑게 인사를 해 주던 담임목사에게 '연약한 자'에 대한 기도를 용기를 내 부탁했다. 흔쾌하게 받아 주시어 감사하고 설레었다. 그런데 이름을 묻는다. 수천 명의 성도 이름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나의 착각은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특별한 존재감에 대한 나의 망상은 오늘도 지리멸렬이다. 그래도 예수가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을 듣기 전에 깨달음을 얻으니 분발하리라! 화장실 쪽으로 급히 가시는 목사님을 붙잡아서일까? 다음에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 담당 교구 목사에게 아양을 떨며 축복기도를 받으리라! 공중에 흩어지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 움직여 역사하는 말씀의 압도하는 힘 앞에서 숭고함을 얻는다. 서로에게 선물 같은 관계가 공동체의 기본이다. 마른 바닥 위에서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는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