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어찌 되었든 숙희와 히데코는 조실부모란 공통분모 출생의 연결선으로 맞닿아 숙희는 장물아비의 손에 히데코는 자살로 위장되어 벚나무에 목을 맨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이모의 마지막 혈육으로 남겨져 엽기적인 사디스트 이모부의 그루밍을 통해 하녀와 아가씨 신분으로 재물 탈취 사기극 속에서 뒤엉켜 반전을 거듭하는 숙명적인 로맨스를 만들어 간다. 상대방의 끌림에 수식어가 필요할까? 동경은 동화(同化)의 첫 단추를 열게 만든다. 숙희에게서 순수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히데코는 속박의 해방을 숙희를 통해 확신을 얻는다. 아름다움이 열매일까, 꽃일까, 뿌리일까? 거울 앞에 선 모습을 자신이라고 확정할 수 있을까? '아가씨'의 함축미에 탄복했다. 억압, 욕망, 저주, 신비, 관음, 도락, 이중성.... 실체적 각성이 감정과 감성을 동시에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역설의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이 그래서 일반적일 수가 없다. 본능을 뛰어넘는 '질투'가 두 사람 사이의 목적을 이루어내었다. 파격적으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희열을 발산하는 숙희와 히데코보다 버려진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끝단이의 풍만한 유방이 더 유혹적으로 눈길을 사로잡아 나는 지금 고개를 오른쪽으로 15도 돌린 채 딴청을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