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가 밀려 보증금을 다 까먹다 두 자녀를 여관방에 맡긴 어미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뇐다. 아빠는 일용직으로 생계를 담당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고 엄마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음식점 배달을 해도 네 식구가 함께 할 공간이 없다. 고2 아들은 목공 기능대회 준비도 포기하고 부모님을 돕겠다고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면서도 귀한 여동생 손을 꼭 잡으며 아빠가 속히 건강을
되찾아 사진 속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숨죽여 흐느끼고 있다. 살아줘서 고마워! 당신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엄마! 살아보겠다 몸부림을 치며 가족이 모여 사는 게 꿈인 힘겨운 이웃의 목숨 같은 돈을 받아 챙기는 자본에 분노가 치밀고 알뜰살뜰 장만한 살림들을 헐값에 매입해 이윤을 남기며 가난한 사람들 등쳐 먹는 또 다른 이웃이 되어 가는 가여운 현실에서 우리는 공범자였다. 슬프다! 타인의 불행한 사연에 직간접으로 연관되어도 내 인생만 행복해지면 그만이라는 몰염치가 저주스럽다. 神은 제발 불행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주면 안 되는 걸까? 언제나 세상은 각광받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고 神마저 축복을 내리니 도대체 어디에서 위안을 얻나? 슬픈 이웃들의 고통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희생이라면 얼마나 잔인한 희망인가? 정말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