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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원 Sep 11. 2023

"주문하신 에스프레소 나오셨습니다!"


"주문하신 에스프레소 나오셨습니다!"


비문(非文)이다. 잘못된 높임말이다.


비문이니 저렇게 쓰지 말라고 뉴스에도 나오고, 국어 시험에도 출제된다. 저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그럼 저게 잘못된 어법이라는 걸 몰라서 쓰는 것일까? 아마 알고도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저러면 듣는 사람이 시비를 덜 거니까,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쓸 것이다.


좀 더 넘겨짚어 상상을 해 보자면, 아마 인간이 최초로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성경책이나 고전을 읽다가도 종종 느낀다.


성경의 시편 8편 5절을 보면 개역한글판에서는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번역한 구절을,


개역개정판에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뭐가 맞을까? 인간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일까,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일까?


학자들은 70인역에서 '천사'라고 번역한 후로 저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그리고 성서비평이 정교해진 지금에 와서는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하나님'으로 환원되는 중이다.


70인역을 번역한 사람들도 아마 '감히 어떻게 인간과 하나님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원문에 ‘하나님’으로 돼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렇게 번역하지 않았나 싶다. 저 구절을 ‘천사’로 외던 신자들은 개역개정에서 ‘하나님’으로 바뀔 때 꽤나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맹자를 읽다가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맹자 등문공장구 상편을 읽다 보면 '피장부야, 아장부야, 오하외피재(皮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라는 구절이 나온다. "저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인데 내가 왜 저를 두려워해야 하는가?"라는 뜻으로, 이 구절만 떼어서 남에게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뭐 상관 없다.


다만 앞 뒤 문맥을 같이 읽고, 주자의 해설까지 같이 읽다 보면 이게 대체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심히 헷갈린다. 문제는 저 ‘피(皮)'다. 영어에서의 'he'나 'it' 같은 지시대명사 격이다. '피(皮)'가 누굴 가리키는지는 당연히 문맥을 살펴야 한다.


원문에서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내 성품(性)이 삶의 본질을 따르고 있다면, 요임금이나 순임금은 물론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높일 것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사실 이 구절에서 헷갈릴 것도 없다.


그런데 주자는 '피(皮)'를 성현(聖賢)으로 해석해 해설하는 바람에 후학들의 골이 띵해졌다.


영어 시험지를 들고 답을 해설하는 사람이 지시대명사를 엉뚱한 걸로 해설해 버렸는데, 하필 그게 '주자'라서… 설마 주자가 틀렸을까 싶었던 거겠지.


주자(朱子) 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왕권이 강해졌고, 함부로 예로 들거나 비교할 수 없어졌기에 아마 저렇게 의도적인 오역을 하고, 잘못된 해설을 하지 않았나 싶다.


살다 보면 내 입에서도 저런 의도된 실수가 수시로 나온다. 맞는 걸 틀리다고 하고, 틀린 걸 맞다고 하기도 한다. 몰라서 그랬으면 한 번 창피 당하고 배우면 그만이지만, 나도 뻔히 알면서 저러니 열도 받고 속도 문드러진다.


그 땐 오히려 '피장부야, 아장부야, 오하외피재(皮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라는 구절을 "저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인데 내가 왜 저를 두려워해야 하는가?"라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게 지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체 뭐가 무서워서, 나는 맞는 걸 맞다고 못 하고, 틀린 걸 틀리다고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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