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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ya Oct 25. 2024

집을 팔아도 안 되는 국어

문해력, 그거 어떻게 키우는 건데?

 어느 정도 입시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국어만큼 해도 점수가 잘 안 오르고, 안 해도 점수가 잘 안 떨어지는 과목은 없다. 오죽하면 대치동에서는 ‘국어는 집을 팔아도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학창시절에 공부는 그다지 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수업 시간에 교과서 안에 판타지 류의 소설을 끼워놓고 읽던 아이들이 반에 한 두 명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다른 과목 점수는 그다지 안 나오는데 국어 성적은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뭘까? 판타지 소설이라 하지만 어쨌든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이 있고 그 글이 너무 재미있었던 것이다. 재미있어서 꾸준히 읽다보니 긴 글을 읽고 전체적인 맥락과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며 문해력이 자연스럽게 키워졌던 것이다.

 문해력은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해독과 독해는 단어의 순서만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그 뜻은 다르다. 이제 막 한글을 뗀 아이는 문자 해독은 가능할지언정, 그 것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아이가 이제 ‘읽기 독립을 했어요.’ 라고 할 때는 문자 해독이 아니라 독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해력을 들여다보자. 중요한건 알겠는데, 문제는 방법이다. 그놈의 문해력, 도대체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는 것일까? 아무 책이나 일단 많이 읽기만 하면 되는 걸까? 

맞다.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불변의 진리, 다독이 정답이다. 아무 책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맞다. 중요한 건 독자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책일수록 문해력 발달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즈음에서 편독 걱정을 아니할 수 없다. 편독은 물론 좋은 것도, 권장할 것도 아니지만 편독이라도 하는게 백배 낫다. 굶는 것보다는 MSG 듬뿍 담긴 패스트푸드라도 먹어야 키가 자라지 않겠나. 입에 맞는 음식으로 시작해 입맛을 찾아야 뭐라도 더 먹을 수 있다. 독서도 꼭 그렇다. 안 읽는 것보다 백배 나은 것이 편독이고 그나마 좀 재미있고 흥미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지속할 수 있다. 문해력의 비결은 특정 도서, 특정 연령, 특정 영역이 아닌 ‘꾸준한 읽기’이기 때문이다. 

 올해 읽기 독립을 시작한 7살 딸은 최근에 학습 만화에 빠졌다. 유치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라는 주제로 한달 간 프로젝트 학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고 관련 학습 만화책 한 권으로 읽기 독립을 시작했다. 학습 만화로 읽기 독립을 성공적으로 시작하더라도 이대로만 두면 안 된다. 만화는 책에 대한 흥미는 가져올 수 있을지언정, 독해력과 문해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동생이 아빠와 체육 학원을 간 토요일 오전은 딸과 나의 도서관 데이트 날이기도 하다. 딸의 손을 잡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소개한 그림책을 몇 권 대출해왔다. 관심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만화책에서 자연스럽게 글밥이 적당히 있는 그림책을 밀어 넣어줬더니 혼자서 곧잘 읽어내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를 키우면서 알게 된 점은 아이들은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큰 마음먹고 어린이 서점에서 전집을 들였더니, 특정 책 한 두 권만 반복해서 봐서 어떤 책은 테이프 공사를 여러 번 할 정도로 너덜너덜 해 졌고, 어떤 책은 손 한번 대지 않아 당근마켓에 새 책으로 팔아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다.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 점에 대해 여쭈어봤더니 이런 아이들이 의외로 많고, 이럴 때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좋다는 답을 공통적으로 얻었다. 아이들은 같은 책을 볼 때마다 새로운 점을 발견하여 여러 번 반복하여 책의 내용과 어휘를 체득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36개월 무렵에도 반복적으로 읽었던 책은 유창하게 읽어 내거나 책의 내용을 기억해서 말해주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 독서는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읽기독립은 ‘책이 재미있어서 스스로 읽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결국 아이가 ‘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책이 재미있어서 스스로 읽다보면 문해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다. 특별한 전집을 사 주지 않아도, 책을 많이 사줄 형편이 안 되어 도서관을 이용하더라도, 유행하는 프렌차이즈 독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집을 팔아 사교육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아도 길러 줄 수 있는 든든한 보험같은 문해력 교육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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