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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Dec 24. 2018

문영과 주연

*글 내용에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문영'을 다시 보았다.

문영은 내가 엉엉 울고 싶을 때, 입으로 소리 내어 '엄마'를 말하고 싶을 때 보는 영화이다.



주인공 문영은 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말을 하지 않는다.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아무도 없는 방에 멍하니 앉아있는 문영의 모습은 어딘가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듯 보인다. 왜소한 체구에 어두운 표정, 소녀를 억누르는 듯한 커다란 가방과 작은 손에 쥐어진 오래된 캠코더가 문영을 나타낸다. 문영은 우연한 계기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희수를 만나게 되고, 둘은 자신의 치부 혹은 상처를 내보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조금씩 다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섬세한 표정과 눈빛만으로 전개되던 영화의 말미에 다다라서야 문영은 처음으로 입을 뗀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는 바로 '엄마'. 절규에 가까운 처절한 음성은 그 어떤 대사들보다 강력하다.  문영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존재. 가장 먼저, 가장 애타게 부르고 싶었던 존재가 바로 엄마이다.

지하철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캠코더로 타인을 촬영하던 문영은 마침내 엄마를 찾았다고 생각하자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며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다. 이 장면은 영화를 보던 내내 눌러 삼키던 울음이나 한숨을 단번에 터져 나오게 한다. 문영이 중년 여성에게 매달리며 서럽게 울 때 나도 문영이 되어 함께 울었다. 나도 '엄마엄마' 소리를 내며 울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엄마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 엄마가 있었던, 지금은 엄마가 돌아가신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은 엄마이다. 사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엄마와 내가 특별히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다. 어릴 때는 셋이 나눠가져야 하는 엄마의 관심이 내겐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커서는 점점 아이처럼 변하는 엄마가 귀찮기도, 어쩔 땐 조금 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엄마는 유일하다. 유일하게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그리워하는 존재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몇몇 어른들의 걱정과 언니의 꿈에 나타나 서럽게 울었다는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 우리는 절에서 제법 큰돈을 내고 천도제를 지냈었다. 절에서는 49제가 지났는데도 엄마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언니의 꿈에 나타나 운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때 엄마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엄마의 몸은 화장을 해서 고운 가루가 되어 하얀 도자기에 담겨 봉해졌는데, 엄마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사실 어느 종교에도 믿음이 없는 내가,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엄마의 영혼을 위해 천도제를 지낸다는 것이 처음에는 스스로도 달갑지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요즘 세상에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었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어떤 종교적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던 엄마가 처음으로 꿈에 나왔는데 너무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엄마가 서럽게 울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천도제를 지낼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우리는 엄마의 죽음에 큰 마음의 짐이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기 전 언니는 한창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3주가량 남겨두었고, 엄마는 그를 결혼식장에 부르면 자신은 절대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언니의 시댁에서는 그래도 결혼식이라는 중대사에 어떻게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를 부르지 않을 수 있나, 그러면 안되니 어머니를 잘 설득해서 양친 모두 모시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중간에 낀 언니는 결국 조금 더 편한 엄마에게 한 발만 양보해 주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결혼식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엄마와 매일매일 통화를 했는데 통화만 하면 엄마가 언니 흉을 보니 참다 참다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왜 이렇게 엄마 고집만 부리노! 중간에서 언니는 얼마나 힘들겠노! 우리도 아빠가 결혼식장에 오는 거 진짜 싫은데 어쩔 수가 없다 아니가!" 

엄마는 나까지 당신을 몰아세우니 많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날을 끝으로 우리는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일. 나는 엄마가 마음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 기다린 것 반, 엄마가 고집을 꺾고 언니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마음 반으로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엄마와 나의 마지막 통화가 되었다. 언니도 나도 매일매일 하던 연락을 딱 3일 끊었는데 그때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니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엄마가 서럽게 울었다는 말에 우리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천도제를 지내기로 결정했다. 천도제를 하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이제 정말 하늘로 올라가면 거기선 행복할까. 거기선 울지 않고 웃으며 지낼 수 있을까.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면 '오야~' 하고 대답하던 엄마는 이제 어디서 어떻게 대답을 해줄까. 정답이 없는 질문들만이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문영은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엄마를 찾기 위해 매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끝내 엄마를 찾지 못한다. 엄마라고 확신하며 간절히 매달리는 중년 여성도 사실은 문영의 엄마가 아니다. 문영은 그 날 이후 엄마 찾기를 멈추고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장례식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뒤 버스나 지하철, 길거리에서 한동안 엄마 또래의 중년 여성들, 엄마와 체구가 비슷한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었다. '아! 우리 엄마랑 비슷한 뒷모습이다', ' 어! 엄마랑 비슷한 머리색이다' 같은 시답잖은 연관성을 찾아내며 엄마를 떠올리거나, 영화관에서 마주친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을 보고는 화장실로 뛰어가서 울기도 했었다. 시도 때도 없이 구질구질하게 못해준 것만 생각났다. '그때 엄마한테 그렇게 짜증 내지 말걸. 엄마가 하자는 대로 그냥 할걸' 하는 소용없는 후회들만이 밀려들었다.


지금의 나는 엄마가 살갑게 부르던 이름으로 30여 년을 살다 이름을 바꿨고, 엄마 생전의 소원이던 다이어트에도 나름 성공했다. 어느 날인가 거울을 보다 문득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바뀌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꽤 많이 변한 나를 못 알아보기도 했는데,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혹은 엄마가 내 꿈에 나타나고 싶을 때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이 생겨났다. 나는 이제 혜지에서 주연이 되었다. 화려한 이목구비의 엄마 얼굴과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던 과거의 혜지는 살이 빠지며 엄마처럼 쌍꺼풀도 생겨나고, 살에 묻혀있던 뾰족한 턱도 드러났다. 엄마를 닮은 긴 목도 생기고 손도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살이 빠지고 보니 나는 엄마를 꽤 많이 닮아있었다. 엄마를 꽤 많이 닮은 엄마의 딸 주연이 되었다.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날, 엄마가 내 꿈에 나타나는 날, 나는 엄마를 보면 울지 않고 웃고 싶다.

어쩌면 문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에게 매달려 떨어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얼굴로 웃어 보이고 싶다. 엄마 딸 주연이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엄마 이제 나는 엄마의 또 다른 소원이었던 다정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많이 많이 받아보겠다고 농담도 해 보이며.

모든 것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그러니 이제 정말 내 걱정은 말라며 크게 웃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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