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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Nov 04. 2018

함께 파도소리를 듣는 사이

영화 <더 랍스터 >를 보고

*글 내용에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5일 후 당신은 어떤 동물이 되시겠습니까?

얼마 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를 찾아봤다. 
오직 커플만이 허용되는 세상에서 이혼을 하게 된 주인공, 그는 다시 커플이 되어야 하기에 커플 매칭 호텔로 소환된다. 그곳에서 묵는 45일 안에 자신과 맞는 새로운 짝을 찾아야 도시로 돌아가 생활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한다면 입소 시 미리 정한 동물이 되어야 한다. 
그가 입소한 날, 호텔 매니저는 어떤 동물이 되겠냐고 질문하고 그는 랍스터라고 대답한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뭐가 될지 고민해봤지만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랍스터

처음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는 장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음식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한 나는 요리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이라 그런지, 제목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아마도 랍스터를 요리하는 영화는 아니겠구나 하는 정도의 시답잖은 생각을 잠깐 동안 했다. 포스터에는 넓은 갈대밭을 헤쳐나가는 듯한 느낌의 남녀가 담겨있다. 제목만 봐서는 내용의 짐작이 어려운 이 친절하지 않은 영화는 포스터 역시 그랬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포스터를 다시 보면 '아, 포스터 잘 뽑았네'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영화를 본 후에 찾아낸 또 다른 포스터는 두 주인공이 서로의 실루엣을 각자 끌어안은 듯 연출되어 있다. 영화의 가장 핵심적이면서 감성적인 부분이라 생각되는 그 장면을 나는 한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기도 했다. 
제목이 랍스터인 이유는 의외로 영화 초반에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고, 짝을 찾지 못할 경우 변하게 될 동물로 랍스터를 선택했다. 과연 그는 자신과 딱 맞는 짝을 찾아 랍스터가 되지 않고 도시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개가 된 그의 형, 숲으로 간 사람들
영화 초반, 그는 새로운 연인이 생긴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고 커플 매칭 호텔로 소환된다. 호텔에 입소한 그의 곁에는 보더콜리 한 마리가 있다. 개는 새로운 짝을 찾지 못해 변해버린 그의 형이다. 그는 개와 함께 전망이 좋다는 101호 방에서 생활하게 되고, 그가 짝을 찾는 과정에서 개에게 생긴 사건을 계기로 극의 전개는 점점 긴박감을 더해간다.
개를 키우는 나는 어떤 영화든 개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더 많이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개는 주인공의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무언가 확실한 메시지를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개가 된 그의 형을 형이라 칭해야 할지, 개라고 칭해야 할지 조금 모호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에서도 그 존재의 이유가 매우 명확하다. 


중반부 이후 영화의 배경은 숲으로 바뀐다. 숲은 도시와 호텔의 중간, 커플과 커플이 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싱글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숨어 사는 공간이다. 숲은 '억지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자유'를 지향하지만 '짝을 찾아 자연스레 사랑에 빠질 자유'마저 구속해버리는 또 다른 고립된 사회에 불과하다.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각자의 무덤을 파서 생활하고, 남녀가 함께 춤추지 않기 위해 혼자서 춤출 수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만 듣는 숲의 사람들.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원해 숲으로 왔지만 우연하게도 주인공은 그곳에서 그와 딱 맞는 짝을 찾게 되고, 숲에서의 금기(사랑에 빠지는 것)를 깨고 만다. 



파도소리
주인공의 '짝'이 된 근시 여인은 사랑에 빠진 죄로 눈을 잃게 된다.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도시로 도망치고,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자신의 눈을 찌를지 말지 고민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미세한 파도소리가 흘러나온다. 과연 그는 호텔로 돌아가 짝을 찾지 못한 채 랍스터가 되어 바다로 갔을까, 근시 여인에서 눈을 잃은 여인이 된 짝을 따라 눈을 잃은 남자가 되어 도시에 남았을까. 어쩌면 눈을 잃고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갔을지도 모른다.


천생연분
영화가 끝나고 나는 며칠 동안이나 나와 딱 맞는 짝이 이 세상에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의 서브주인공 중 한 명은 매일 코피 흘리는 여인을 짝으로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코를 때려 억지로 코피를 흘린다. 이 정도면 노력이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연애를 워낙에 못하는 사람이기도, 잘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늘 '딱 맞는 짝'을 원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하지만 사랑도 연애도 영화가 아닌 현실! 현실이다. 현실에서는 '딱 맞는 짝'보다는 '같이 맞춰 갈 수 있는 짝'을 찾아야 한다. 

연애는 서로가 얼마나 맞는지, 또 맞춰줄 수 있을지에서 시작과 끝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걷는 속도나 잠드는 시간 같은 사소한 생활습관부터 취미, 영화와 음악의 취향, 감정의 높낮이 심지어 주종의 취향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취향들 중,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을 상대에게 얼마나 맞춰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접점이 전혀 없는 상대에게는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나와 달라서 매력을 느낀다는 것도 결국은 나와 다른 그 부분 말고는 상당 부분 접점이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첫눈에 반해 콩깍지가 씌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흔히 말하는 '코드'가 맞아야 관심이 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취향의 접점이 발목을 잡는 기분을 느끼며, 시작의 문턱에서 보이지도 않는 어떤 것에 걸려 넘어지고 뒤돌아서기도 여러 번.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연애할 준비가 덜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아직. 

올바른 생각과 좋은 마음을 가진, 나와 취향이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 중 연령대가 비슷하고, 같은 나라에 살며, 나와 현실에서 만나질 가능성이 있는 남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랑은 우연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온갖 우연이 겹쳐지고 겹쳐져 딱 맞춘 타이밍에 그와 그녀가 만나고 이것저것 요리조리 상대를 돌려보다가 '음, 이 정도면 우리 조금 맞춰나가 봐도 괜찮겠군' 싶을 때 사랑 비슷한 게 시작되는 것이다. 글로 쓰고 보니 역시 천생연분이란 건 정말 난해한 말이구나.
과연 나는 나와 딱 맞는, 혹은 서로에게 맞춰갈 수 있는 짝을 찾아 그와 함께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혹시 당신이 랍스터를 흥미롭게 본 사람이라면 벌써 우리는 한 가지 접점이 있는 사이가 되었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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