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도전하다
사실도전이라는 거창함은 어울리지 않다.
그냥 52세 퇴직 후 마땅히 할 일은 없고 가진 재주라고는 그간 해오던 품질관리 엔지니어 와
애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학원강사직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진입장벽이란 것이 20대 젊은 친구들한테나 낮은 것이지, 내 나이 대에는 모든 새로운 일이
일반적으로 만리장성급으로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훈장마을이라는 강사 인력 사이트에 호기 있게 글을 올렸다.
물론 직장 경력은 의미 없기에 안 썼고, 과외 경력과 약간은 도움이 되는 학력만 입력했다
그래도 명색이 석사지만 방통대 예술석사라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학부 학력만 적는 가방끈 후려치기였다.
다들 위조라도 해서 올리기 바쁜데 나는 그나마 있는 학력까지 삭제한 것이다.
가르치는 건 자신 있었다.
과거 20년 전 잠깐 4년 정도 회사를 쉬면서 학원강의 와 과외로 학생들을 지도해서 생긴 근거 없는 용기가
내가 가진 무기의 다였다
쉽지는 않았다.
지원은 했지만 연락 오는 데는 거의 없었고, 내 출신 대학이 좀 괜찮게 생각이 되었는지 연락이 와도
면접에서 나이 많다는 이유로 탈락의 연속이었다.
좌절 가득 찬 시간
생각해 보면 경제적으로 그리 급박한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수입이 끊기니 조급해졌나 보다
그러다가 맘 고쳐먹고 '내가 왜 멀쩡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는지' 근본적인 고민에 빠져보았다.
'조금 없이 살아도 맘 편히 하고 싶은 것을 하자'던
초심을 되새기자 맘이 참 편해졌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강사제의가 왔다.
기분전환 겸 프로야구 직관 경기를 보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그리고 다음날 면접을 봤고 어느덧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건은 최저시급 수준에 불과한 몇 달 전 받아 온 수입의 1/3 수준이었다.
단지 내 출신 대학만 보고 일단 뽑았고 나이 많다고 급여를 최저로 계약한 거다.
그렇게 웃기게 어이없게도 내 제2의 직업이 시작됐다.
얼떨결 시작은 시작이고 어쨌든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수업준비하고 강의했다.
내가 아는 것과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온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수업교과 공부에 힘을 쏟았고, 현직 초등 교사인 아내와 고교 교사인 친형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쪽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결과적으로 철저한 능력주의인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 생각보다 장기간
사교육 교단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교과 수업준비는 경력이 일천하여 노력이 많이 필요했지만, 다른 외적인 면은 조금 낯설었지만 학원이라는
공간에 적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원장과의 관계, 다른 강사와의 관계, 강의 외적 업무 등은 회사업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에 피'였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다 가르쳤지만, 나름대로 애로 사항은 다 있다.
초등은 교과내용은 쉽지만, 그 당연한 상식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새삼 초등 선생님들의 수고가 느껴졌다.
중등이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 않고 할 만하다고 쉽게 덤볐으나 큰 코를 다치고 나중에는
각 학년별 연계성이라든지 고교과정과 연관성을 고려한 강의내용에 담는 등의 변화도 겪게 되었다.
고등과정은 보통 다른 비전공 강사들이 꺼렸지만, 철저히 교과내용 숙지와 문제풀이가 중요하기에
오히려 나에겐 편했다.
나의 고교시절 이해가 잘 안 된 상태였던 미적분, 삼각함수, 거의 포기했었던 확률, 통계 부분이
대학 때나 회사 재직 중 품질관리 기술사 준비 등으로 오히려 개념이 잡혀서
가장 자신이 있던 부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강의 때도 개념중심의 심화 강의가 가능하었고 반응도 매우 좋았다.
내 수업을 듣고 성적 향상을 가지게 된 학생을 보며 묘한 성취감을 가지게 되었고,
박봉이지만 비교적 재미나게 시간을 보냈다.
물론 아버지뻘도 더 되는 강사를 처음부터 애들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요즘 청소년들의 이해 못 할 행동에 욱하여 화를 자주 내기도 하였으니 소위 인기 강사는 아니었다.
좋은 강사는 수업만 잘해서는 안되고, 아이들과 소통을 잘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난 전자는 웬만큼 되었지만 후자가 안 되는 강사였다.
비록 지금은 작가라는 꿈을 좇아 그만두었지만,
좌충우돌 짧았던 2년 7개월의 학원강사 생활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