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과는 로봇 태권 V를
못 만든다

어쩌다가 엔지니어가 되다

by 자유인

자기의 전공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누가 무시하면 기분 나쁘다.

내 학부 전공은 기계공학이고, 대학원 전공이 영상문화콘텐츠라는 긴 이름의 전공이다.

두 전공은 아주 아주 이질적이다.

거의 공통점이 없다.


먼저 학부전공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본 태생이 예체능 성향임을 애써 무시하고 고1 때 우수한 성적만을 믿고 이과에 진학해서도

잘하리라 기대했고,

나름 애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성적은 아주 유연하게 우하향하였고, 결과적으로 고3 성적도 많이 불만족스러웠고 자포자기하는 맘으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공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미대, 그중에서도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과 이름 영어명에 design이 들어가는

기계설계학과(mechanical design dept.)를 선택했다.

기계공학과는 로봇 태권 V 같은 것을 만드는 재미없고 무지막지한 전공 일거라는 가히 무지가 하늘에 이르를만한 수준의 인식으로 회피하였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평생 업이 될지도 모르는 대학 전공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단순히 과이름만

보고 선택하다니..


입학하고서 비로소 알았으니 기계설계학과는 기계공학과의 아류였다.

아니다 거의 이름만 틀리지 거의 동일한 학과였다.

졸업 후 1년 만에 학부제가 되면서 기계공학과와 통합이 되었고 보통 이렇게 합치면 작은 논란이라도

있기 마련인데, 아무런 관련 부문 간 논란이 없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유사한 학과였다.


80년대 후반 이과생은 과학과목을 2개 선택해야 했다.

난 물리가 어려워서 화학을 선택했고, 지구과학도 어려워서 생물을 선택했다.

공통점은 물리적 역학관계를 다 피해 간 거다.


기계공학은 물리와 아주 친한 학문임을 알았을 때 좌절했다.

아무도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구글)


기계공학은 물리 역학에 근간을 둔 공학분야로서 고전적인 동력발생기계에 대한 설계에서부터 메카트로닉스,

나노(nano), 바이오(bio) 엔지니어링 기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와 연관된 학문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나면 자동차, 항공기, 선발, 철강재료, 공작기계 등 국가 기간산업인 중공업 분야뿐만 아니라, 제품의 설계, 제작 및 설비에 관련된 내용을 취급하는 IT, BT, NT를 포함한 화학공업, 금속, 전기,

전자, 반도체, 건설장비, 의료 등 모든 산업분야까지 다양한 산업체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img-new-me02.jpg (구글)


그렇다. 매우 국가발전에 꼭 필요한 중요한 학문이다.

나하고 안 맞아서 그렇지.


힘들었다.


화장실에서 좌절하며 내 하찮은 기준의 선택을 증오했다.

그렇다고 전공을 포기할 용기도 없고 해서 회피기동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 군대에 가서 3년 동안 머리를 식히고 왔다.

그런데, 군대도 좀 편하게 복무하려고 공군 지원했더니

기계공학 전공자라고 항공기 기체 정비특기를 부여해서

좀 공군치고는 많이 고생했다.

다운로드.jpg (공군 항공기 정비병으로 근무)


1학년때 만난 5년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제대하고 나니 생각나는 건 '영어는 알파벳이요, 수학은 사칙연산'밖에 없었다고.

물론 과장법이지만, 복학준비 하려고 입대 전 전공과목 필기노트를 보니

알 수 없는 수학기호와 공식들은 그야말로 외계인의 언어였다.


기계공학이란 학문이 공간적 사고와 역학적 마인드가 좋은 이에겐 참 재미있는 학문이지만

나처럼 감성적인 이에겐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취업이 너무 잘되는 단점이 존재한다.


당장 취업을 해서 밥벌이를 해야만 했던 나에게 이 유혹은 떨쳐버리기 아까운 무언가였다.

IMF가 엄습하기 전이기도 했지만, 진짜 원서에 본인 이름만 제대로 쓰면 현대나 삼성 같은 대기업에

합격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취업이 소위 깡패인 과였다.

이런 메리트(MERIT)가 없었다면 당장 떨쳐버릴 정도로 공부 자체가 어려웠다.

성적도 바닥이었다.


어쨌든 간신히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졸업해서 그 간판으로 취업을 했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며 세칭 가장 노릇을 28여 년 동안 원만하게 할 수는 있었다.


고맙다. 기계공학


원만하기만 했지, 내가 가장 못 하는 부분으로 직업을 선택한 것은 내 발전에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잘하는 부분으로 직업을 선택했다고 잘 풀리라는 법도 없었으리라.

그래도, 재미있지는 않았을까?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후회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도 30년이 넘게 간직하고 있는 전공 서적을 가끔 넘겨보는데..

그때마다 이 어려운 걸 어찌 견디고 해냈을까.. 나 자신이 기특한 맘이 들었다.


다 닥치면 하기 마련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