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025년 여름
열기에 입이 턱턱 막힐 정도의 더위에 말을 잊다
매년 그 기록을 경신했다 하고, 지역 기후가 변해가고 있다 하는 등 말이 많다
이런 즈음에 문득 난 1994년 31년 전으로 내 기억의 방향타를 향하게 해 본다.
그때 나는 공군 병장 그것도 제대일인 8월 13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전군(全軍)의 적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비상은 걸리면서 분위기도 흉흉하였고,
혹시 제대가 연기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TV 뉴스를 노심초사 주시하였다.
더위로 아스팔트가 녹고 온열환자가 다수 발생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졌다.
수치적으로 한낮기온이 33도를 넘는 폭염일수가 29일
7월 18일부터 31일까지 14일 동안 내리 열대야가 이어져
진주지역 역대 최고 기온 38.9도가 이해 기록
밀양이 39.4도, 창원도 39도
그 당시 군대생활은 어땠을까?
참혹했다.
그나마 시설이 육군보다 나았지만 20명이 넘는 혈기왕성한 사내들이 천장 선풍기 바람에
그 찜통을 견디기란 보통일이 아니었다.
선임이나 저 밑에 졸병이나 최소한의 의상만 걸친 채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더위를
견뎌내야만 하던 악조건이었다. 샤워를 해도 그때뿐..
공군이 이랬으니 힘든 육군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는 진정한 군인들은 어땠을까!
기온상으론 지금이 그때보다 더 높았지만 체감은 1994년이 더 더웠던 여름이 아니었을까.
누가 더 더운지 경쟁은 의미 없다.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시절. 평상시 여름보다 유난히 뜨거웠던 1994년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실내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디든 시원하니 밖에 안 나가면 된다는 단순한 해결책이 있으니
아무리 더워도 그 시절보다 나은 편이라고 자위해 본다.
오로지 2년 6개월이 넘는 그 기간 동안 나의 희망은 제대하는 날이었다. 1994년 8월 13일..
그 희망으로 그 더웠던 여름이 그리 덥지 않았다.
바로 옆에 36도의 온열인 전우와 같이 생활하는 열약함이 존재했지만 견딜만했다는 피상적 말로 날 위로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건강히 군복무를 마친 점은 지금도 대견하고 감사한 일이다.
제대 후의 삶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군대에서의 그 잔혹한 여름더위만 기억에 선할 뿐..
그렇게 1994년의 기억의 편린은 짧지만 강렬했던 그 여름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