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 성지를 스치다

가을 향기에 취해서

by 자유인


나는 천주교 신자다.

햇병아리 천주교 신자다.

신앙심이 산속 졸졸 흘러 발목도 안 잠기는 냇가보다 낮다.

그러나, 성지를 가면 무언가 내 맘속을 휘몰아치는 감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배론 성지에 도달했을 때도 그랬다.

이 위대한 성지를 있게 한 성인들의 생애에 눈이 촉촉해졌다. 감동이 내 심장을 뛰게 했다.


풍경 좋은 단풍.jpg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교우들이 모여 형성된 오래된 교우촌이다)

배론 성지 입간판을 보고서야 '베론'이 아니고 '배론'임을 알정도로 무지했지만 성지감성지수는 신앙심보다 훨씬 높다. 가을 단풍이 워낙 유명해서 이곳이 성지임을 자각하지 못 한 관광객의 하나라고 의심받기 딱 좋게

나도 경치에 취했다.



정자옆 노란.jpg (원래 이곳은 '배의 밑창을 닮았다'하여 배론이라 한다)



아내가 화장실에 간사이, 저 먼치 6촌 형과 많이 닮은 사람이 보였지만, 아닐 거야 하고 결론 내리고 계속 가을감상을 지속했다. 너무 낯을 가리나?

깊은 다짐을 하지 않으면 밖에서 아는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는 내성적 성격을 탓하자.

그러나 아무리 봐도 6촌형이 확실하다고 느껴질 때쯤 이미 내 다리는 애써 외면하는 기동을 하고 있다.

오롯이 바닥과 나무 곳곳에 가을을 내 잔상에 염색하고 있는 이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기와.jpg (3대 보물_황사영백서, 성요셉 신학당,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묘_이 있는 담벼락이다)



성지에 가서 성스러운 맘을 지닌 채 있다 보니 저녁이 다가왔다. 허기가 진다.

목숨보다 더 귀한 그 무언가가 이들에겐 있었다. 새삼 존경스럽다.

숭고한 그들을 생각하며 나 같은 보통사람은 사소한 배고픔도 못 이기는 세속성에 다시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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